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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작가의 전매특허, 따라해 봤습니다

옛 공간사옥 부지에 재개관한 아라리오 갤러리

등록 2023.02.14 11:15수정 2023.02.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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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bson Double Neck Jimmy,2022,107*50*7(d)cm 권오상 작가의 작품을 스케치해서 리플릿에 오려 붙였다. 옛날 그림 느낌이 나서 좋다. 다른 리플릿에서 관련 단어를 오려서 콜라주로 붙였다. ⓒ 오창환

 
아라리오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갤러리로는 규모가 가장 큰 편에 속하는데, 서울을 비롯해서 천안 터미널에도 갤러리가 있고 중국 상해에도 지부가 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은 2014년, 현재 공예박물관에서 삼청동으로 넘어가는 감고당길 소격동에서 문을 열었다. 소격동 갤러리는 아라리오가 가진 명성에 비해서는 다소 소박하였는데, 소격동 전시장을 닫은 지 일여 년 만인 2023년 2월 종로구 원서동에 이전 개관 전을 갖는다.

안국역에서 내려서 현대건설 본사 빌딩 쪽으로 약간만 걸어가면 예전부터 쓰던 '공간'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곳이 공간설계사무소 옛 사옥이며 지금은 아라리오 뮤지엄 그리고 아라리오 갤러리가 있는 곳이다.


공간사옥은 우리나라 일 세대 건축가중 대표적 인물인 김수근 건축가의 대표작이자 사업공간이었으며, 고전적인 검은 벽돌 건물로 1971년에 건립되었다. 이후 1996년에 공간의 2대 수장 장세양 건축가가 김수근의 작품 옆에 모던한 유리 건물을 증축하였고, 2002년 삼대 수장 이상림 건축가가 한옥까지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벽돌 건물과 유리 건물 그리고 한옥이 긴 시간에 걸쳐 각각 다른 필요에 의해 지어졌지만 서로 약간씩 양보해 가며 사이좋게 있는 모습이 보기 즐겁다.

공간사옥은 일 세대 현대 건축의 걸작으로 건축과 관련된 담론에서 이 건물만큼 많이 언급된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2013년 공간의 부도로 경매에 나왔다가 유찰된 것을 아라리오 그룹에서 사들였다. 현재 벽돌 건물은 아라리오 뮤지엄으로 사용되고 있고, 유리 건물은 고급 식당으로, 한옥은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재개관하는 아라리오 갤러리가 이 옆으로 들어오는 것인데, 갤러리의 건축 디자인은 일본 스키마타 건축의 대표인 조 나가사카가 맡았다. 스키마타 건축은 기존 건물의 구조와 재료를 유지하는 동시에 공간사옥과의 조화를 고려하는 설계를 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아라리오갤러리는 김수근 건물처럼 고전적이면서 장세양 건물처럼 모던하다. 결과적으로 뮤지엄과 갤러리가 공존하게 되었는데, 아라리오 뮤지엄은 아리리오의 소장품을 기획 전시하는 개념이고 유료로 운영된다.


갤러리는 전속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곳이고 무료로 운영된다. 그래서 만약 원서동 아라리오에 갔는데 유료라고 하면 놀라지 마시라. 그곳은 뮤지엄이고 옆으로 가면 무료 입장하는 갤러리가 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이전 재개관으로 2월 1일부터 3월 18일까지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 작가가 참여하는 그룹전을 한다. 전시 제목인 <낭만적 아이러니 Romantic Irony>는 독일 낭만주의의 이론적 기수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개념에서 인용하였다고 한다.

갤러리는 지하 1층에서 시작되는데,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권오상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은 이번 개관 전시에서만 일반에게 개방되고 이후에는 VIP룸으로 사용된다. 5층은 전망이 좋아서 바로 옆의 현대 원서공원이 보일 뿐 아니라 멀리 창덕궁도 앞에 가리는 것 없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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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아라리오 갤러리 5층에서 바라본 현대 원서공원. 작품은 권오상의 구성(2023)이다. 오른쪽은 권오상작 BUST(GH)(2022)이다. 이 작품을 보면 역입체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 오창환

 

권오상 작가는 입체에 사진을 오려 붙이는 '사진 조각'으로 유명한데, 과거 그의 작품이 구상 조각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점점 추상화 되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헨리 무어의 조각 작품 형태 위에 만화 원피스의 문신을 한 일본 야쿠자, 모델 지지 하디드, 가수 잔나비의 사진들을 붙여 놓기도 했다.

피카소의 입체파는 하나의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그것들은 한 화면에 그려 넣는데, 이번에 선보인 권오상의 인물 조각 작품은 그런 그림을 조각조각 사진 찍어 반대로 입체를 만드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역입체파 작품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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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 권오상작 <네조각으로 구성된 비스듬히 기댄 형태>이다. 뒤로 기타 조각이 보인다. 오른쪽 사진. 현장에서 기타 조각을 스케치 했다. ⓒ 오창환

 
나는 권오상 작가의 작품을 그리기로 했는데  헨리 무어를 오마주한 작품은 그 자체로는 멋있지만 형태가 동글동글하고 단순해서 스케치로 그려 놓으면 맛이 살지 않을 것 같아서 벽에 걸려있는 기타(Gibson Double Neck Jimmy)를 그리기로 했다.

앉아서 그릴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아 갤러리 기둥에 등을 기대고 스케치했다. 관객도 많지 않아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이고, 관객들이 모두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내가 스케치하는 모습을 보고는 좋다는 눈짓을 보내고 가신다. 

갤러리에서는 스케치만 하고 집에 와서 채색을 하려고 보니 기타 목이 너무 짧게 그려졌다. 평소에 다른 시람에게는 '비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하는데, 막상 내 그림에서는 비례가 틀리니까 눈에 거슬린다.

오려 붙이는 것이 권오상 작가의 전매특허니까, 고민 끝에 스케치북을 오려서 전시 리플릿에 붙이고 목을 좀 늘려서 그렸다. 그리고 리플릿의 전시소개를 콜라주로 잘라 붙이고 보니, 마치 클래식한 옛날 작품이 시대를 넘어서 튀어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
#아라리오갤러리 #권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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