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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행사는 없었다, 대전 시민단체의 당당한 '청산식'

"지역의 희망을 준 곳"... 풀뿌리사람들 해산 모임식에 자랑스럽게 모인 회원들

등록 2023.02.25 11:48수정 2023.02.2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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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4시 30분 대전(커먼즈필드 대전 모두의 공터)에서는 10여 년 동안 활동해온 '사)풀뿌리사람들'이 청산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 심규상

 
단체 창립행사는 많지만 해산행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조직이 단기 목표가 아닌 장기 목표를 두고 설립되기 때문이다.

또 조직을 계속 운용하기 어려워 소멸 절차를 밟더라도 드러내놓고 청산 행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목표를 달성해 해산하기보다는 내부 사정 등으로 지속 운영이 불가능해 소멸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그런데 24일 오후 4시 30분 대전(커먼즈필드 대전 모두의 공터)에서는 15년 동안 활동해온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청산을 위해 당당하게 모였다. 행사 명칭도 '해산 행사'였다. 대전에서 공익적 시민 활동을 지원해온 '풀뿌리사람들'이다. 이 단체는 지난 2008년 '시민들의 일터인 직장과 삶터인 마을에서부터 시민참여와 변화를 이끌겠다'는 목표로 창립했다.

당시 창립선언문을 보면 "마을에서부터 새로운 희망을 키우고 싶다"며 "마을을 소비와 주거의 공간에서 생활의 공동체로, 대안의 뿌리로 다시 서도록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공익적 시민사회가 활성화되도록 안내하고 평범한 주민들의 대안 생활 운동을 지원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이후 풀뿌리사람들은 현장 생활인 중심, 새로운 유형과 방식의 시민운동을 선보였다. 당시에는 생소한 어린이도서관을 통한 주민 운동 등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운동, 풀뿌리유랑단(전국 풀뿌리 운동 신진사례 현장 직접 탐방 통한 모델 찾기), 사업적 기업가 발굴, 협동조합 발굴 및 지원 등 수많은 사업을 벌였다.

장수찬 목원대 교수는 풀뿌리 사람들의 활동 성과에 대해 ▲지역과 주민 중심으로 시민운동의 영역을 확장하고 ▲풀뿌리 활동과 성장육성 풀뿌리조직 인큐베이팅(사회적기업가 발굴, 사회적경제사업체 지원, 협동조합 발굴지원) ▲구성원 모두가 논의에 참여하는 수평적 의사결정 방식 도입 ▲풀뿌리 운동의 확산 등의 굵직한 성과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실제 이날 여러 참석자가 "풀뿌리사람들에서 만나 풀뿌리사람들에서 고민하고 풀뿌리사람들에서 성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참석자들도 "새로운 경험이자 나를 키운 시간", "지역의 희망을 준 곳" 등으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왜 청산을 결정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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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4시 30분 대전(커먼즈필드 대전 모두의 공터)에서는 10여 년 동안 활동해온 '사)풀뿌리사람들'이 청산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 심규상

 
이날 청산식 참석자들은 "소임을 다했다"고 말했다. 송인준 이사장은 "다양한 중간 지원조직들이 만들어지고 지역사회 공익활동 지원체계가 공고해졌다"며 "창립 당시 계획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씨앗의 역할로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본다"고 밝혔다.


때문인지 단체의 해산과 청산의 자리임에도 참석자들의 표정은 밝았다. 한 참석자는 "마지막 청산의 자리인 만큼 아쉽고 섭섭하지만, 소임을 다해 해산하는 만큼 자랑스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완숙 상임이사는 "그동안 뿌려놓은 씨앗이 널리 퍼져 건강하고 풍요롭게 자라고 있다"며 "청산하지만 걸어온 길이 역사의 거름이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단체의 활동은 기록으로도 남았다. 이날 배포된 기억 백서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를 꿈꾼 10년>(책임집필 강영희)에는 그동안 활동사가 360쪽 분량으로 빼곡하게 담겨 있다.  한권으로 보는 풀뿌리사람들이 걸어온 길이다.

그렇다고 이날 행사가 회상과 기억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장수찬 목원대 교수는 "풀뿌리사람들에 이어 주민운동의 정치참여 모색 등 '다음 단계'의 새로운 운동과 목표를 제시할 또 다른 집단(조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도 "지금까지 시도해 본 일보다 해보지 않은 영역이, 아는 것 보다 모르는 영역이 더 많다"며 "그동안 뿌린 씨앗을 질적으로 어떻게 자라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가 놓여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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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백서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를 꿈꾼 10년'에는 그동안 활동사가 360쪽 분량으로 빼곡하게 담겨 있다. 한권으로 보는 '풀뿌리사람들'이 걸어온 길이다. ⓒ 심규상

 
그동안 풀뿌리사람들에 몸담았던 회원들은 다음 단계의 목표와 방법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다.

"매달 5만 원을 내는 2000명의 사람을 모으면 어떨까요. 그런 지속 가능한 풀뿌리재단을 만들면 어떨까요?" (이용원 월간토마토 편집국장)

"활동가들을 일정 기간 지원하는 재단이 생기면 지역사회운동이 훨씬 활발해질 것 같아요." (김용분 풀뿌리사람들 전 이사)

"한 분야의 운동에서 전체를 바라보는 통합적 사고로 전환해 역할과 방향을 고민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새로운 역량이 필요합니다." (고은아 대전환경교육센터장)

"풀뿌리사람들이 해왔던 것처럼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그런 단체가 있었으면 합니다." (임효진 대전시사회적자본지원센터)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의 의사결정 연대기구(연합체 조직)를 만들어 내는 게 과제입니다." (김성훈 한국주민운동교육원 트레이너)
#풀뿌리사람들 #해산 #청산 #마을공동체 #풀뿌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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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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