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4월 8일 검찰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보도와 관련해 MBC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한 가운데, 출입구를 봉쇄한 MBC 노조원들과 검찰 수사관들이 대치하고 있다.
남소연
이 판결은 또 정부 및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원칙도 확인했다.
지난 2019년 1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공식 발표한 'PD수첩 사건 조사 및 심의 결과'에서도 국가기관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명시됐다. 또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에 대하여 헌법재판소 및 대법원이 공적 인물의 공적 사안에 대한 언론 보도에 관해 매우 좁고 엄격하게 인정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가정보원은 지난 2013년 "국정원이 무능력하다"는 내용의 신문 칼럼을 썼던 표창원 전 의원을 상대로 "국정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지만, 검찰은 수사도 않고 각하 처분했다. 검찰 스스로 "수사에 착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국가기관은 명예가 없기 때문에 명예훼손 고소 자체가 불가능하고, 대통령실이나 장관 명의로 명예훼손 고소, 고발이 들어온다면 수사기관은 신속히 각하시켜야 한다"면서 "그런데 지금 정부가 고소, 고발하면 경찰이 각하를 하지 않고 지체하거나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로 인해 언론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기관의 고소·고발 남발은 언론 취재는 물론 일반 국민들의 일상적 자유도 심각하게 제약할 우려가 크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측이 스토킹범이라고 고발한 <시민언론 더탐사> 기자(관련 기사 :
한동훈 장관 취재 후 무너진 신입기자의 일상),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인사의 사무실을 취재차 방문한 기자 사례(관련 기사 :
대통령 40년지기 취재한 기자, 수사·재판에 시달린 450일)가 대표적이다.
취재 위축시키는 법적 대응... "언론 감시 싫으면 공직 내려놓으면 돼"
우선 한동훈 장관 측이 문제 삼은 <더탐사> 기자의 취재 행위는 한 장관의 관용차를 3차례 추적 취재한 것이다. 3번의 취재 과정에서 해당 기자는 한 장관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않았고 한 장관의 거부 의사 역시 듣지 못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추적 취재는 언론사 기자라면 한번쯤 경험해본 취재 방식이다. 만약 이 취재 행위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다면 앞으로 기자들의 권력 감시 취재 영역과 방식은 극도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은 "과거 취재를 할 때 나도 며칠씩 잠복도 하고 쓰레기통도 뒤졌다, 장관 관용차 역시 기자가 취재를 위해 따라다닐 수 있다"라며 "고위공직자가 그런 언론의 감시 활동이 불편하고 싫으면 공직을 내려놓으면 된다, 공직자들은 언론의 감시가 필수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남근 참여연대 변호사는 "스토킹방지법의 입법 취지에 비춰볼 때 해당 취재 행위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여진다"면서 "언론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인데, 이런 고발은 언론의 공적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UPI뉴스 기자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 40년 지기인 황하영 동부산업 사장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주거침입' 혐의로 고발당했고,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해당 기자가 사무실 내부에 있는 황 사장의 집무실을 잠시 들어간 것을 주거침입으로 인정한 판결이다.
현재 1심 판결에 대한
항소가 진행 중인데, 이 판결이 확정되면 기자들이 취재를 위한 사무실 방문 등에 심각한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아울러 일반 국민들이 회사 관계자의 동의를 얻어 사무실을 방문했음에도, 사무실 내부에 있는 일부 공간을 동의 없이 둘러보는 경우도 처벌 받을 여지가 생긴다.
박록삼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은 "당시 취재 상황을 놓고 봤을 때 해당 기자의 사무실 취재는 도를 넘어서는 위법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취재 관행상 일정 부분 용인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면서 "기자의 이런 통상적인 취재까지 촘촘하게 법의 잣대로 재단을 하면서 제약을 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항소심에서 상식적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발 남용하는 권력기관, 헌법적 가치도 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