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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

[네팔] 불신자의 성지순례 ③

등록 2023.04.03 16:46수정 2023.04.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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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서 남쪽으로 가던 버스는 오후가 되어 네팔과 인도의 국경인 바이라하와에 도착합니다. 버스에 타 있던 여행자들은 우르르 내리지만, 저는 아직 내리지 않습니다. 여기서 방향을 틀고 30분여를 더 달려, 제가 도착한 곳은 룸비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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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시내 ⓒ Widerstand


룸비니는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입니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이죠. 석가모니가 태어난 해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죠. 기원전 600여 년으로 추정하는 의견부터, 기원전 1,000년 경으로 보는 의견까지 그 폭도 아주 다양합니다. 한국에서는 기원전 624년을 석가모니가 탄생한 해로 보고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사실 남아시아의 고대사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남아시아에 아리아인이 정착한 이후 기원전 1500년부터 1000년까지는 고대 종교인 브라흐만교의 기초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을 '전기 베다 시대'라 부릅니다. 전기 베다 시대에는 제단을 세우고 제물을 바치는, 기복신앙과 같은 형태의 종교 활동이 이어졌죠.


이후 기원전 1000년부터 500년 경까지는 '후기 베다 시대'로 분류합니다. 이 시기에는 원래 유목이나 목축으로 생활하던 아리아인도 정주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하죠. 농업과 상업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합니다. 종교보다는 세속적 부가 중시되는 시대였죠.

이 시기, 제단을 쌓고 복을 비는 기복신앙에 대한 반발도 생겨납니다. '우파니샤드'라는 경전을 통해 오히려 사상적이고 철학적인 종교가 만들어지죠. 우파니샤드는 중요한 것은 제사 그 자체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안의 상징을 파악하고 삶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이 우파니샤드로부터 남아시아 종교의 원류가 형성됩니다. 업(業)이나 윤회(輪回)와 같은 개념도 여기서 처음 등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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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마야데비 사원 앞의 석주 ⓒ Widerstand


그리고 이 시대, 남아시아 북부에는 여러 도시국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름 정도만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내부 상황을 세밀히 알기는 여전히 어렵죠. 다만 이 가운데 '카필라(Kapila)'라는 왕국이 있었습니다. 그 왕인 슈도다나(Suddhodana)와 마야 부인 사이에 태어난 이가 고타마 싯다르타였습니다.

마야 부인은 여섯 개의 상아를 가진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석가모니를 임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석가모니를 낳았다는 신화가 전해지죠.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하늘에도 땅에도 오직 나만이 존귀하니, 온 세상의 모든 고통을 내가 평안케 하리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물론 이 역시 일부 경전에 등장하는 설화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며,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등 다른 내용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직후 한 선인이 찾아와 "이 아이는 출가하면 깨달음을 얻을 것이고, 출가하지 않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슈도다나는 아들이 뛰어난 왕이 되기를 바라며 밖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성 안에서만 아이를 길렀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는 결국 성의 네 문 밖을 둘러보게 되고, 결국 출가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부처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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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의 탄생을 묘사한 불상 ⓒ Widerstand


석가모니 사후에도 룸비니는 한동안 성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아쇼카 왕도 이곳을 순례하고 석주를 세웠다고 하죠. 하지만 이 도시는 남아시아의 불교 소멸과 함께 방치됩니다. 이곳이 석가모니의 탄생지로 다시 알려진 것은 1896년, 아쇼카 왕의 석주가 발견된 이후입니다.

포카라에서 방향을 틀어 30분, 저는 아직 국경을 넘지 않았습니다. 룸비니는 인도와의 국경 근처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네팔의 영토입니다. "부처님이 네팔에서 태어났다는 걸 알고 있니?"라는 질문은 네팔인들에게 가끔 들을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죠. 저는 길거리에서 "부처님은 네팔에서 태어났다(Buddha was born in Nepal)"고 쓰인 트럭을 본 경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말에는 딴지를 걸자면 걸 수도 있습니다. 2500년 전 석가모니가 국적이나 여권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닐 테고, 국경이라는 것은 현대에 와서 설정된 것에 불과하니까요. 인도인이었는지 네팔인이었는지를 묻는 것 자체가 아주 근대적인, 그 시절의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질문이입니다. 그걸 지금의 국경을 기준으로 나누려는 시도는 더더욱 그럴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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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성원 구역 안의 네팔 국기 ⓒ Widerstand


다만 이런 주장의 배경은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네팔은 현대사의 수많은 격랑을 헤쳐 나와야 했던 국가입니다. 그 사이 계급 간의 차별과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었겠죠.

네팔은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도인 국가로, 오히려 인도보다 힌두교 비율이 높은 국가입니다. 카스트 제도는 1963년부터 이미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차별의 습속은 어디서나 그리 쉽게 사라지진 않죠. 카스트 사이 재산과 교육수준의 격차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네팔이 선택한 국민 통합의 상징이 석가모니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현재의 네팔 지역에서 태어난 위대한 인물이면서, 카스트와 차별을 부정한 선지자였기 때문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네팔이 말하는 "부처님은 네팔에서 태어나셨다"는 말은 그저 출생지를 따지려는 시도는 아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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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탄생지에 세워진 마야데비 사원 ⓒ Widerstand


룸비니 권역은 국제사회가 함께 성역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1967년 당시 UN 사무총장이었던 우 탄트(U Thant)가 룸비니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곧 룸비니의 성역 관리 사업이 시작되죠. 1972년부터 일본을 중심으로 룸비니 마스터플랜이 만들어졌습니다. 1985년에는 룸비니 개발공단이 만들어져 세계 각국이 함께 불교 유적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 탄트는 최초의 아시아인 UN 사무총장이었습니다. 그의 임기 사이에 프라하의 봄, 소련의 체코 침공,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등 여러 분쟁이 벌어졌죠. 그는 냉전의 시대 양 진영의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지도자로서 여러 분쟁을 해소하고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마침 그가 룸비니를 방문한 1967년은 3차 중동전쟁이 벌어진 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룸비니의 성역화 사업은, 단순히 네팔만의 것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룸비니 성역에도 역시 다른 성지와 마찬가지로 세계 각국에서 만든 절이 있습니다.

각국의 양식대로 만든 여러 절을 둘러보았습니다. 네팔인이 묻는 "부처님의 탄생지가 어딘지 아니?"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건 단순히 네팔인의 평화를 넘어 세계인의 평화와 통합의 상징이, 네팔에 만들어져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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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 성역 안의 작은 운하 ⓒ Widerstand


부처님의 탄생은 물론 설화입니다. 저는 신앙이 없는 불신자이니, 그 신화와 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전생에서부터 덕을 쌓아 부처가 되었다고 하지만, 저에게는 '본생담'이라 불리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도 그저 전설의 하나로 들립니다.

오히려 저에게는, 현생에서 몸을 가지고 있었던 석가모니의 고민이 더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그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또 부처라 불릴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면, 그것은 기억도 기약도 할 수 없는 전생이 아니라 현생의 치열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외람된 생각도 해 봅니다.

석가모니의 탄생은 신화가 되어 남았습니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저에게, 중요한 것은 오래된 신화보다는 지금의 마음이리라 생각합니다. 평화와 통합을 바라며 세워진 세계 각국의 사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봅니다.

차별 없는 네팔과 세계를 꿈꾸며 세웠을 불상을 바라봅니다. 그것을 통해 평화를 바랐을 불자들의 마음과 그렇게 상징이 된 부처의 힘을 생각합니다. 2500년 전을 살았던 그의 말이, 지금까지 울려퍼질 수 있도록 한 그 강력한 평화의 힘을 생각합니다. 신화도 전설도 믿을 수 없는 불신자인 제가, 오직 믿는 힘은 그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세계일주 #세계여행 #네팔 #룸비니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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