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댄스복.
김은혜
그런데 요즘 육아는 다르다. 내겐 여섯 살 난 조카가 하나 있다. 언니는 같은 아파트에서 육아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서로 품앗이하듯 아이를 봐준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이 그랬듯이 언제나 아무 때나 불시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시절엔 잠깐 아이를 이웃집에 맡기고 약속에 다녀오는 것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양가 부모님 댁 혹은 정말 잘 알고 지내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맡기는 게 전부다.
언니는 가끔 조카를 혼내다가 감정이 격해질 때면 혼잣말로 이렇게 읊조린다. "아니야, 오은영 선생님은 날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어. 아이한테 감정적으로 굴지 말자." 다혈질 언니가 오은영 선생님을 소환하면서까지 인내하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측은하다.
부모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놓치지 말고 살아야 할 게 너무 많은 시대 같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결핍된 부분을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틈틈이 배우고 적용해 보려 하지만, 결국엔 우리도 아이에게 새로운 결핍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조카의 환한 얼굴과 튼튼한 팔다리를 보고 있으면, 부모의 사랑으로 자란 아이는 그 어떤 결핍도 이겨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릴 적 받았던 만큼의 마음을 베푸는 동네 이모는 못 될 것 같다. 하지만 육아라는 고된 수행 길을 엿본 이웃으로서, 모든 육아하는 부모들을 진심을 다해 지지하고 응원하고 싶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낮에는 번역가ㅣ밤에는 작가ㅣ곁에는 러시아에서 온 쿼카.
그날 쓰고 싶은 말을 씁니다. 어제의 글이 오늘의 글과 다를지라도요.
공유하기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우던 그때, 내겐 댄스복이 있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