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캐리어짐을 줄이기가 어렵다.
유종선
아이가 자라는 순간은 그때 그때의 예쁨이 있고, 한 시절의 아름다움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러니 부모로서 이를 소중히 누리라고, 미리 경험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말해주었다. 알지만 그렇게 잘 되지 않았다. 육아는 힘들었고 난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리고 도망의 큰 명분이 있었다. 직업적으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절대적 사명. 일에 대한 강박과 불안, 조바심이 그 시절을 누리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시절만의 예쁨들은 차례로 흘러 지나갔다. 지나고 나니 아쉬웠다. 지나고 나니 그렇게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었다. 되는 일은 됐고 안 되는 일은 안 됐다.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게 삶인가 싶었다.
긴 여행, 멀리 가는 여행을 계획하기는 더욱 힘들었다. 먼저 일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눈치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각자 자기 직업이 있는 부부가 서로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울 뿐더러, 아이가 긴 여행을 버텨내기도 어렵다. 경제적으로도 부담이다. 그러니 유럽은 먼 꿈일 뿐이었다.
지난 여름엔 내가 시간이 안 됐는데, 이번 겨울엔 아내가 시간을 만들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위기감이 들었다. 더 자라기 전에 아들의 시간을 내게 새겨넣고 싶었다. 아빠와 아들의 시간을 진하게 확보하고 싶었다. 그래서 얘기했다. 둘만이라도 꼭 다녀오겠다고. 허락하는 한 가장 길게.
아내는 항공사 홈페이지를 열고 가능한 날짜들을 바로 검색해주었다. 아내는 내가 진심으로 상황이 허락하는 가장 긴 기간을 다녀올 것이라고는 생각 못한 모양이었다. 열흘만 다녀와. 아님 보름? 나는 가능했던 22일을 다 채울 것을 고집했다. 정말 다녀올 수 있겠어? 불신의 눈초리.
나중에라도 취소하고 날짜를 줄이거나, 중간에라도 아내가 합류하거나 등의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며 일단 전체 날짜를 정했다. 흥, 내가 취소할 줄 알고? 2월 초부터 2월 말까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들어가서 프랑스 파리에서 나오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모든 세부 사항들은 이 항공표 예매로부터 시작됐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짜 가는구나. 가야지, 가야지 시간을 보내다 너무 늦어버렸다는 핑계를 대고 대충 가까운 데로 짧게 다녀오는 가능성이 사라졌구나. 이제는 준비를 해야만 한다.
목적지를 정한 논리는 이러했다. 22일이나 날짜를 확보하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멀리 가자. 유럽이면 적절하다. 그리고 겨울이니 따뜻한 지중해 연안이 어떨까. 스페인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궁금하다. 그리고 파리.
난 어린 시절 파리에서 아들의 나이였을 때부터 3년을 산 적이 있다. 많은 것을 잊었으나 제2의 고향같은 친근감이 있다. 아들을 데리고 그 시절의 기억을 되새겨보고 싶었다. 3주 정도의 여행 기간 중에 날씨가 조금이라도 따뜻해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따뜻한 남에서부터 북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마드리드보다는 바르셀로나가 좀 더 직항편 날짜 선택의 폭이 넓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에서 파리까지의 큰 계획이 섰다. 아내는 많이 이동하지 말 것을 조언했다. 짐을 가득 싸들고 어린 아이 손을 붙들고 이동하는 일은 너무 힘들거라고.
두세 개 도시 정도에만 있다 와도 대단한 거라고. 그런데 이미 내 마음 속에는 뭉게뭉게 배낭여행 시절의 정신이 철 없이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기왕에 가는 김에, 제대로, 더 많이! 어떤 고생을 하게 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로....
아들의 예열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