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하와이하다>의 일부.
비채
책 <하와이하다>를 다시 꺼냈다. 최근 훌라를 배우며 다시 읽으니,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마침 작가가 지금 나와 비슷하게 훌라 수업이 석 달째 접어들었을 때 쓴 글은 꼭 나를 보는듯하다.
작가는 훌라 수업에서 처음엔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무슨 손동작을 해야 하는지 갈피조차 못 잡았다. '몸과 싸우지 말라'는 쿠무(훌라 선생님을 이르는 말)의 조언을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나니 이제야 춤이 남들과 조금 비슷하게 춰진다고 말한다. 여전히 동작은 어설프고, 혼자 엉뚱하게 다른 방향으로 돌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리바리 갈팡질팡하다 실수하고 식은땀을 닦으니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넌 지금 잘하고 있는 거야. 실수한다는 건 좋은 징조야. 네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거거든. 노력하니까 실수도 하는 거야. 실수하고 나면 틀린 걸 알게 되고 그럼 고칠 수 있거든."" (123-124쪽)
'실수해도 괜찮다'라는 쿠무 덕분에 나도 훌라를 출 때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디 훌라뿐일까? 누구나 실수하지 않으려다가 더 경직되어 일을 망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경쟁이 만연한 우리 사회 분위기와 남에게 완벽하게 보이고 싶은 욕심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은 어떨까? 어떤 시도도 안 하기에 실수도 없는 것보다 멋지다고 나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내가 가는 훌라 수업에서는 모두 머리에 꽃핀을 꽂는다. 훌라를 오래 배운 수강생은 꽃 꾸러미 목걸이 레이(lei)를 목에 걸거나, 머리에 화관을 쓰기도 한다. 하와이에 온 듯 착각하게 만드는 화려함이 보기만 해도 즐겁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가 레이를 만드는 수업에 간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작가는 커뮤니티 센터에서 레이 만드는 수업에 신청했는데, 가보니 할머니들만 있어서 깜짝 놀란다. 수제 쿠키와 망고를 대접해주는 할머니들의 환대 속에서 그는 레이 만드는 법을 배운다. 알고 보니 5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 우리나라 현충일에 해당)에 하와이 국립묘지에 걸 레이가 무려 오천 개가 필요했던 것. 할머니들보다 손이 세 배나 빠른 작가는 그들의 구원투수가 되어 사랑받았다는 이야기에 저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레이는 꽃으로 만드는 게 제일 흔하지만, 초록 잎사귀로 만들기도 한다. 재료가 되는 티(ti) 잎은 건강과 복을 가져다주고 악귀로부터 보호해준다고 믿기 때문에 이 잎으로 만든 레이는 건강과 행운을 지켜준다는 의미다. 목걸이 형태가 아니라 긴 줄처럼 목에 거는 모양도 있는데, 서로의 마음을 가두지 않고 항상 열어놓는다는 의미라고 한다. 환영의 의미로 걸어주는 꽃목걸이 혹은 훌라 댄서의 장신구라고만 생각했던 레이 하나에도 이런 깊은 뜻이 있구나 알게됐다.
작가는 서문에서 책 제목 <하와이하다>는 포루투갈어 '창문하다(janelar)'라는 동사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라는 뜻처럼 작가는 하와이를 통해 다른 세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하와이하다>는 바로 창문 같은 책이었다. 책을 통해 훌라를 바라볼 수 있었고 직접 배우는 행동에 옮길 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이 나에게 "왜 훌라는 배우고 싶었어?"라고 물으면 이 책을 내밀어야겠다. 나도 언젠가 석양 지는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훌라를 출 수 있기를 꿈꾼다고 말하면서.
하와이하다
선현경 (지은이), 이우일 (그림),
비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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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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