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23초짜리 돈다발 영상, 그 '주인공' 유동규 아니었다?

[정진상 공판 분석 ①] 검찰 수사기록 '취사선택' 공방... 2021년 10월 남욱 조서 봤더니

등록 2023.04.12 05:04수정 2023.04.12 05:04
34
원고료로 응원
뇌물수수, 부정처사후수뢰,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기소된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공판이 진행중이다. 검찰은 정 전 실장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으로부터 8차례에 걸쳐 2억4000만 원을 받았고, 대장동 개발 사업 관련 천화동인 1호 지분 24.5%(428억 원)을 약속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공판과 공통점이 있다. 유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이 핵심이란 점이다. 주요 쟁점을 정리한다.[편집자말]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공판에서 한 영상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남욱 변호사와 대장동 사업 초기 동업자였던 정재창씨 등이 5만원권 돈다발을 쌓아놓고 웃는 장면이 담긴 23초 짜리 동영상이었다. 남 변호사와 정씨 그리고 정영학 회계사 등 세 명이 마련한 9000만 원을 전달하기에 앞서 촬영한 이른바 '인증샷'이기도 했다. 

2021년 10월 21일, 검찰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부정처사 후 수뢰 약속 혐의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기소했다.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관리본부장 재직 당시 '대장동 일당'에게 유 전 본부장이 3억5200만 원을 수수했다고 판단했다. 그 중 9000만 원이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된 정황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검찰이 2022년 7월 22일 공판에서 공개한 동영상이 바로 '23초짜리 돈다발 영상'이다.

그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지금, 23초 짜리 동영상의 '주인공'은 유 전 본부장에서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은 정 전 실장이 대장동 사업 인허가 편의 등을 제공한 대가로 모두 여덟 차례에 걸쳐 2억40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 중 9000만 원이 전달된 시점을 2013년 4월 16일로 특정하고 있다. 23초 짜리 '인증샷' 동영상이 촬영된 날짜가 바로 2013년 4월 16일이다.

"2층도 알아서도 안 된다"... "가만 있어봐, 유동규 전달"   
 
a

2013년 4월 16일 '정영학 녹취록' 중. ⓒ 뉴스타파 제공

     
23초짜리 돈다발 영상 촬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촬영됐는지는 같은 날짜 '정영학 녹취록'에 상세하게 등장한다. 

남  욱 : "형 얼굴하고 같이 한 번 찍자."

정재창 : "아무튼간 단체사진 한 번 찍어, 단체사진."

정영학 : "무슨 단체사진..."


정재창 : "이거는 서로 (..) 돈 놓고 단체사진 한 번 딱 찍어야지."

정영학 : "진짜요?"

정재창 : "않으세요('앉으세요' 오기로 보임. 기자 주), 여기. 어차피 XX 딴 짓 못하게 다들. 이 사람(..) 이리 와. 단체사진 찍어."

정영학 : "나 안 찍을래요. 난 안 죽을라요. 진짜로 찍네."

정재창 : "가만 있어봐. 유동규 전달..."


정영학 : "아, 그걸 왜 써요? 돈, 돈 이걸 왜 써요? 이거를?"

이 상황이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는지도 2013년 3월 21일 정영학 녹취록,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의 통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대장동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널리 알려진 "2층(이재명 당시 성남시장 측을 의미)도 알아서도 안 된다"는 발언이 여기서 나오는데, 유 전 본부장과의 대화 내용을 남 변호사는 이렇게 전한다. 

남  욱 : "내(유동규 전 본부장)가 크는데 내가 배팅을 좀 해야 될 데들이 있다. 내가 여기서 자리 가지고 크는데, 그걸 좀 도와줘라. 잡자. 이 형 동생 하기로 했으니까, 그걸 형 입장에서 그걸 도와줬으면."

정영학 : "필요하다?"

남  욱 : "예.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다른 놈들 돈은 됐고 사고나니까."

정영학 : "사고 안 나면 흔들어 봤자야."

남  욱 : "예, 이거는 2층도 알아서도 안 되고. 그 다음에 너말고는, 니 부인도 알아서도 안 되고, 라고 얘기를 하면서, 우리 둘만 평생 갖고 가."


정영학의 메모 "유동규 본부장이..."
 
a

성남도시개발공사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진상 전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정진상'이란 이름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정 회계사는 녹취록을 검찰에 제출하면서 당시 상황을 또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유동규 본부장이 총 4.2억원을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2013. 5. 29 현재까지 총 2.1억이 유동규 본부장에게 돈 전달하였음. 

2013. 04. 02. 70백만원
2013. 04. 16. 90백만원
2013. 04. 16. 10백만원 (이중 9백만원 빌려서... 2013. 5. 29)
2013. 05. 29. 20백만원."


2013년 4월 16일 상황을 정 회계사와 남 변호사가 복기하는 과정 또한 녹취록(2013년 5월 29일)에 존재한다. 역시 정 전 실장 등에게 돈이 전달됐다는 것을 시사하는 발언은 확인할 수 없다.

정영학 : "우리가 처음에 9천을 줬어요? 7천을 줬어요?"

남  욱 : "9천을 준 모양인데요 형, 그러면."

정영학 : "처음에 9천? 그러니까 다음에, 다음날 천만 원을 들고 간 기억이 있어요."

남  욱 : "그건 9천 주고 천 들고 간 거죠."

정영학 : "아, 그런가보다."


남욱의 '형님들' 증언... 2021년 10월 검찰 조서와 큰 차이
 
a

남욱 변호사가 3월 31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배임 의혹 관련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와 같은 이들의 기억을 현재 검찰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다. 

"유동규는 남욱에게 돈을 요구하여 2013. 4. 경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소재 유흥주점에서 남욱으로부터 현금 9000만원을 교부받았다. 정진상은 위와 같은 일시경 위 유흥주점의 다른 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유동규로부터 위와 같이 마련된 현금 9000만원을 수수하였다. 계속하여 유동규는 다시 남욱이 있는 방으로 와 추가로 1000만원을 더 달라고 요구하였고, 남욱은 유동규의 사무실을 찾아가 유동규에게 현금 1000만원을 전달하였다. 정진상은 2013. 4. 경 성남시청 2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유동규로부터 위와 같이 마련된 현금 1000만원을 추가로 수수하였다." (정 전 실장 공소장 중)

그리고 검찰은 지난 3월 29일 열린 1차 공판에서 9000만 원이 오간 날짜로 2013년 4월 16일을 특정했다. 같은 날짜 정영학 녹취록과 종합하면 이렇다. 남 변호사, 정 회계사, 정재창씨가 별도의 장소에서 9000만 원 인증샷을 촬영한 뒤 남 변호사는 9000만 원을 들고 술집으로 이동하여 그 곳에 있던 유 전 본부장에게 전달했고, 또 유 전 본부장은 그 돈을 들고 같은 술집 다른 방으로 이동하여 정 전 실장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판단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 중 하나는 남 변호사의 '새로운 진술'이다. 남 변호사는 지난 해 11월 대장동 공판에서 "당시에는 몰랐는데 유 전 본부장이 (다른 방에 대해) '형님들'이라고 말했다"면서 위 검찰 공소장과 비슷한 내용의 진술을 내놨다. 또 2021년 검찰이 유 전 본부장에게 적용한 뇌물 혐의와 관련해서도 3억5200만 원 중 2000만 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형님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증언은 최근 <뉴스타파>가 공개한 2021년 10월 21일자 검찰 신문조서와 비교하면 그 신빙성에 의문이 생긴다. 당시 검찰은 유 전 본부장, 남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을 한 자리에 불러 대질 조사를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검사와 남 변호사의 문답 중 일부다. 

문 : "유동규는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로 피의자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데, 왜 그랬던 것인가요."

답 : "일단 유동규의 성격이 원래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돈을 줘야 도와주겠다는 뉘앙스가 깔려 있었습니다. 그때는 저희가 완전히 '을'이었으니까, 저희가 돈을 주면 유동규가 뭔가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고, 유동규도 그런 사실을 알았으니까, 유동규는 저희가 당연히 돈을 줘야 하는 것처럼 얘기를 했습니다."


유 전 본부장이 '갑'이었고 남 변호사가 도움을 기대한 당사자 역시 유 전 본부장이었다는 말이다. 정 회계사가 2021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힌 바도 비슷하다. 그는 유 전 본부장에게 3억5200만 원을 준 사실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공사 설립 조례안이 통과된 이후이기 때문에, 공사 실세로 유동규가 가는 것은 기정사실화 되어서 대장동 사업과 관련하여 잘 봐 달라고 돈을 만들어줬고, 유동규가 적극 돈을 달라고 요구했었다"고 진술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검찰이 취사 선택한 기록 아냐"
 
a

2013년 4월 16일 상황을 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가 복기하는 과정. 2013년 5월 29일자 정영학 녹취록 중 일부다. ⓒ 뉴스타파 제공

 
2021년 검찰 수사 당시 '대장동 일당'의 진술과 '새로운 진술'을 대조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도 그래서다. 지난 4일 공판에서 정 전 실장 측은 유 전 본부장 신문 조서 대부분이 2022년 9월 이후 시점이라면서 "검찰이 증거를 선별적으로 제출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 9월은 유 전 본부장의 '새로운 진술'이 나온 시점이다. 2021년 9월부터 대장동 개발 의혹 관련 수사가 시작된 만큼 관련 진술조서를 모두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전 실장에게 검찰이 뇌물 혐의말고도 적용한 부정처사 후 수뢰 약속 혐의는 이른바 '428억 원 약정설'로 대장동 의혹의 몸통과도 같은 부분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정 전 실장 측 조상호 변호사(법무법인 파랑)는 10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검찰이 조서 제공에 협조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유동규씨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 아닌가. 그 진술의 신빙성을 검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유 씨가 본 사건 관련해 진술한 내용 전체를 봐야, 어느 부분이 일관된 것인지, 어느 부분이 변경된 것인지, 또 어느 부분이 왔다갔다하는 것인지 확인할 수 있지 않겠나."

- 검찰은 필요한 기록은 다 줬다는 입장인데?

"자신들(검찰)이 편철한 기록은 다 줬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원하는 건 자신들이 취사 선택한 기록이 아니다. 정 전 실장이 대장동 사건 관련해서 뇌물 받았고 뇌물 받는 약속을 했다는 것 아닌가.

그럼, 정말 그랬는지 알려면 주요 증인들이 과거에 어떻게 진술했는지, 어떻게 했기에 그때는 정 전 실장이 입건조차 되지 않았는지, 그 후 어떻게 진술이 바뀐 건지 등을 구체적으로 우리가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동규, 남욱, 정영학, 김만배, 정민용, 여기 더하면 정재창 등 주요 증인들이 검찰에서 했던 진술 전체를 내 달라는 거다."

이들 6명의 대화가 오간 기록이 또한 정영학 녹취록이다. 녹취록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진술'들이 나오면서 '23초 짜리 영상 돈다발'의 최종 소유자는 정 전 실장으로 바뀐 상황이다. 조 변호사는 "검찰이 정공법대로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본인들이 갖고 있는 것 전체를 다 드러낸 상태에서 공방을 펼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11일 유 전 본부장 측 변호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동규씨가 풀려나기 전 진술이 담긴 조서를 기꺼이 제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진실 공방이 새로운 국면에 돌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진상 #정영학 녹취록 #유동규 #남욱 #조상호
댓글3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윤 대통령, 류희림 해촉하고 영수회담 때 언론탄압 사과해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