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과 나산책할 때 옷차림의 나.
이선민
물론 내가 무엇을 입고 어떤 위치에 있든 그들은 내게 조금 더 친절했어야 했다.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나도 어지간히 추레하게 하고 다녔다. 그래서 요즘 나는 어디 가서 면전에서 홀대받지 않을 만큼, 딱 그만큼은 차려입고 다닌다.
희한한 건 누가 나를 홀대하고 무시하는 건 그 사람이 날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화가 하나도 안 난다. 그런데 누가 우리 개 복주, 그러니까 진도믹스 누렁이를 무시하면 그렇게 화가 난다. 요즘 친구들 말을 빌리자면 '발작 버튼'이 제대로 눌린다고나 할까.
우연찮게 시베리안허스키라는 품종견인 해탈이랑 진도믹스인 복주를 같이 키우다 보니 누렁이에 대한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을 더 절절하게 느끼는 것 같다. 정말 산책 중 만나는 열에 아홉은 품종견인 해탈이한테 호감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복주는 아무나 따르지 않고, 해탈이는 본래 애교도 많고 사람 좋아해서 그런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에 놓일 때마다 곁에서 해탈이가 예쁨 받는 걸 보는 복주가 노상 맘에 걸려 죽겠다.
뿐만 아니다. 복주는 서울의 한 애견카페에서 단지 진도믹스라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한 적이 있다. 또 용인의 한 애견 펜션에서는 복주의 품종을 묻더니 넓고 깨끗한 메인룸은 다 제쳐두고 공사 중인 맨 뒷방을 배정했다. 그뿐인가? 펜션 사장은 그곳에 머무는 내내 불쾌할 정도로 복주를 경계했다. 마치 전과자를 보듯이 말이다.
진도믹스에 대한 이들의 적개심을 모르는 건 아니다. 시골에서 보던 복주 같은 친구들은 대부분 사나운 이미지였다. 그런데 말이다, 상황이 그 지경이면 나 같아도 짖는다. 하릴없이 일 미터 목줄에 묶여 바깥만 보고 있는데 개가 허공에 대고 컹컹 짖는 것 빼고 할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으려고. 그러니 다들 짖었을 테고, 그런 짖는 개를 보고 사람들은 진돗개는 사납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요즘 도심에서 산책하는 진돗개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 안정된 환경에서 보호자와 교감하며 지낸다. 우리 복주도 그렇고 복주 친구들도 전부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진도믹스를 보면 겉모습만 보고 무조건 경계한다.
네발 달린 짐승도 함부로 차별하지 않기를

▲해탈복주옷을 입고 있는 복주 옆에 맨몸으로 있는 해탈.
이선민
이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자꾸 복주를 과하게 꾸미게 됐다. 남들 눈에 예뻐 보였으면 좋겠기에 말이다. 내 옷은커녕 같이 사는 시베리안 허스키인 해탈이한테는 옷 한 벌 안 사주지만 복주한테는 온갖 아이템을 사준다. 누구도 우리 개를 함부로 무시하지 않았으면 싶어서 말이다. 이렇게 사랑받고 크고 있다고 광고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랬더니 어라? 사람들이 확실히 복주를 덜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누렁이가 티셔츠 하나 입었다고 토이푸들이 되는 것도 아닌데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르게 반응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하는지 알게 됐다.

▲니트를 입은 복주캐시미어 니트를 입은 복주.
이선민
전에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실현 가능성 없는 쓸데없는 상상은 안 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틈날 때마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오성급 호텔에 복주랑 복주 친구들을 잔뜩 불러 데리고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호텔 측에서는 나한테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우리를 내쫓겠지. 그러면 나는 그들의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돈을 가방에서 꺼내 로비에 뿌리는 거다(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이보다 더 현실적인 꿈은 훨씬 더 자주 꾸는데,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가 지금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차별받은 얘기를 들으며 경악하듯 미래의 대한민국에서는 네발 달린 짐승도 존재 자체로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이 지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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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라는 게시글 하나로 글쓰기 인생을 살고 있는 [산만언니] 입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음이 기웁니다. 재난재해 생존자에게 애정이 깊습니다. 특히 세월호에 깊은 연대의식을 느낍니다. 반려견 두 마리와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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