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먹기 위해 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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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냥 싫다. 그 물은 먹기 싫다. 애초에 수도꼭지의 물을 바로 틀어서 마시는 일도 거의 없지만, 끓여서 먹든 정수기에 거르든, 그 물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다. 마치 그들이 두루마리 휴지로 입을 닦기 싫은 것처럼, 우리도 화장실 물이 먹기 싫다. 깨끗한 휴지이고, 깨끗한 물이지만, 우리와 서양인들의 청결 개념이 확 차이가 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서양의 욕실은 한국과 달리 건식이어서, 약을 보관한다고 해서 금방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화장실 안이 전혀 습하지 않다. 거울장 안에 넣고 문을 닫는다면 그뿐인 거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자진해서 내 약을 화장실에 보관하고 싶지는 않다.
결국 우리는 합의점을 찾았다. 아, 일부러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암암리에 합의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독하는 빨간약이나 밴드 같은 것들은 화장실 서랍에 여전히 두되, 매일 먹는 약들은 부엌으로 이동했다. 영양제도 부엌 찬장 안으로 이동하고, 물도 부엌에서 마신다.
남편은 여전히 화장실에서 물을 떠서 침실 탁자에 갖다 놓기도 하지만, 어쨌든 약들은 화장실에서 탈출했으니 두 문화의 타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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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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