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산의료원 진료협력팀 김은영 간호사.
최미향
- 근무하면서 안타깝거나 보람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진료과에서 3차 병원 권유 시에는 막막하잖아요, 어디로 갈지 고민스럽고요. 병원을 정하더라도 인터넷이나 ARS 전화 예약이 어려우신 어르신들께 상담을 통해 원하는 기관, 원하는 날짜에 외래를 연계하여 도움을 준답니다. 상당히 고마워하세요. 그 모습에서 보람을 느끼지요. 마치 연로한 부모님을 보는 듯해서 더 안쓰럽기도 하고요.
진료협력팀이 운영되면서 진료과장님들이 환자를 전원 저희 팀에 맡기는 바람에 업무 부담이 줄었다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실 때 보람있죠. 무엇보다 환자들이 고마워하실 때 '아 참 잘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요.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한 분이 계세요. 혼자 사는 어르신으로 심장이 안 좋으셨어요.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는 분인데 '일을 마무리하고 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 바람에 일정을 빨리 잡아드리지 못했죠. 대신 증상이 발생되면 지체없이 응급실 방문을 안내해드렸어요.
그런데 해당일에 갑자기 아드님께서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며 연락을 해 온 거예요. 다시 일정을 잡아드렸는데 정말 조마조마했죠. 나중에 전화드리니 '진료일 다음 날에 수술받았다'며 '현재 집에 계시는데 2차 수술 예정'이라고 하셔서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습니다. 이 분처럼 일이나 금전 문제 또는 이동 수단 등이 안 되어 제때 진료를 못 받을까 봐 걱정되는 분들이 간혹 계세요. 안타깝죠.
또 다른 분은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분이셨어요. 따님(거주 기반)이 전라도 광주, 손녀가 전남 나주여서 지역 요양병원을 원하셨죠. 인터넷으로 목록을 보며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대한진료협력간호사회 회원병원 목록을 찾아 해당 지역 상급종합병원 진료협력팀에 문의해 요양병원 목록을 받았지요.
연락해보고 적절한 요양병원 목록을 보호자에게 제공해 보호자 상담 후 원하시던 요양병원으로 가시게 되셨죠. 너무 감사해 하더라고요. 제가 직접 연락하여 필요서류 제공, 진료시간 등을 안내해드리니 보호자분이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어요. 저도 지역 외 회송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고요."
- 이런 부서가 있는 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네요. 혹시 꿈이 간호사 선생님이셨나요? 근무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요.
"1남 4녀 중 저는 둘째였어요. 아시겠지만 옛날 어르신들은 딸들이 많으니까 마음에 안 들었던가 봐요. 어머니가 꽤 힘들어했죠. 경제적인 자립도 없었고요. 그러다 보니 어머니는 딸들만이라도 전문직 여성이 되어 경제적 능력을 갖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봐요. 제게 간호학과를 추천해주셨어요. 아마 저를 제일 잘 알고 계시는 분이니 제 적성에 맞을 것으로 생각했나 보죠. 간혹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적성에도 잘 맞아 항상 최선을 다하면서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리고 막 병원에 근무할 때였죠. 처음 만난 신장이식 환자 보호자가 유난히 기억납니다. 그분은 명문대를 다니시던 분이었는데 똑똑하다고 소문이 났었어요. 제가 그분의 환자분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들어간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얼마나 미숙했겠어요. 그때 오히려 보호자께서 저를 위로해주시는 거예요. '괜찮다. 천천히 해라. 그럴 수도 있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다'라고요. 그 보호자분은 제때 시간 맞춰 약도 잘 챙겨 드리고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돌봐드리는지 제가 감동할 정도였어요.
다른 한 분 역시 신입 간호사였을 때 만난 암환자셨는데, 통증이 심하다 보니 진통제를 썼었죠. 그런데 다음날 새벽 조용히 돌아가셨더라고요. 무척 편안한 얼굴로요. 간호사복을 입고 바라본 죽음은, 이상하게 무섭기보다 경건했던 것 같아요."
- 간호사복을 입고 있으면 마음가짐이 다를 것 같습니다. 많은 죽음을 보셨을 텐데 그런데도 힘들었던 때는요.
"여전히 가슴 한 켠을 아프게 도려내는 아버지의 죽음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2008년 가을, 향년 69세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날은 당신께서 망둥어를 자그마치 300마리 넘게 잡으신 최고의 날이었죠.
기분 좋은 모습으로 생선을 손질하다 갑자기 심장 쪽에 문제가 생겨 '남은 망둥어는 내일 손질하겠다'고 하시고 응급실로 실려 오셨는데 그만 돌아가시게 된 거예요. 딸이 간호사임에도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버지 가신 날은 안개가 무지 심했어요. 급하게 형제들에게 연락했지만, 혹시 놀라서 사고라도 날까 봐 차마 아버지의 죽음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퇴직 딱 10년 만에 어머니와 알콩달콩 사시다 그렇게 되셨으니 어머니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죠.
아버지 얘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아프네요. 너무 일찍 돌아가셨어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디 건강관리 잘하셔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