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곡동 일대 산책길.대모산 탄허박물관에서 세곡공원 거쳐 율현공원까지 산책 코스.
이상헌
산책의 출발은 수서역 6번 출구로 나와 곧바로 대모산으로 올라도 되지만 세곡동 방향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2정거장 지나 쟁골마을에서 하차하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만 걷다보면 탄허기념박물관이 나오며 볕 좋은 날이면 유리창 사이로 들어오는 빛살이 따스하기 그지없다. 박물관 내외부에 각종 연등이 불을 밝히고 있으므로 들여다보는 재미가 삼삼하다.
인재 양성에 힘쓰며 불경 한글화에 매진하다
천도교 신자인 율재(栗齋) 김홍규(金洪奎)는 항일 독립운동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에게 전달하는 일을 맡았다.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인쇄하여 옥고를 치뤘으나 86년이 흐른 2005년이 되어서야 건국포장을 추서받는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큰 병을 얻은 그였지만 한약 제조 사업으로 일군 거금을 김구 선생에게 전달하며 한민족을 위해 공헌한다.
둘째 아들 김금택(金金鐸)의 재능을 알아보고 당시 기호학파 16대 종가인 이극종(李克宗) 선생의 데릴사위로 보내어 한학을 통달케한다. 구도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젊은날의 탄허(呑虛) 김금택은 오대산 상원사 방한암(方漢岩) 선사의 명성을 전해듣고 서신 왕래를 통해 불교와 첫 인연을 맺는다.
▲ 대모산 자락 타고 탄허박물관 품은 세곡동 둘러보시죠 ⓒ 이상헌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방한암 스님은 근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승려로 보조국사 지눌의 선사상을 계승한 인물로 추앙받고있다. 탄허는 17세에 결혼하여 자식을 둔 상태였으나 방한암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22세에 출가한다. 상원사에서 15년 동안 수행정진하며 여러 승려들에게 불경을 강의하는 한편 번역에 힘을 쏟는다.
43세 때 월정사 조실로 추대되어 오대산 수도원을 설치하고 불교와 사회전반에 걸쳐 인재를 양성하는데 매진한다. 아울러 조계종 초대 중앙역경원 원장을 지내면서 팔만대장경의 한글화 작업에 몰두한다. 그의 나이 55세에 이르러서는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의 10년에 걸친 한글 번역을 마친다.
원전 화엄경 80권은 무려 11조 글자에 이르는 방대한 양으로써 원고지로는 6만 여 장이나 되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쉼 없는 정진으로 다수의 경전을 번역하여 간행하였으며 1982년 70세로 입적한다. 이듬해 국민훈장이 추서되었고 2010년에는 탄허기념불교박물관이 자곡동에 세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