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토요일>에서 신조어를 맞히는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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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거지(빌라에 사는 사람들을 속되게 이르는 말)', '벼락 거지(자신의 소득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음에도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사람을 가리키는 신조어)', 특정 분야에 미숙하고 서툰 사람들을 어린이에 빗대는 표현들인 '주린이'(주식 초보자), '골린이(골프 초보자)', '와린이'(와인 초보자) 등의 제목은 지양하는 추세기 때문이다. 왜냐고? 차별과 편견이 담긴 표현이라서다.
책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에서 나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편견이 담긴 표현은 아닌지, 미처 몰랐던 혐오의 표현은 아닌지, 성평등 가치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소수자나 약자에게 상처가 되는 제목은 아닌지 돌아보는 습관도 생겼다. 가령 언론에서 여과 없이 쓰는 신조어인 '빌거'('빌라 거지'의 줄임말), 휴거('휴먼시아에 사는 거지'의 줄임말) 같은 혐오와 차별의 말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무심결에 주목을 끄는 단어를 써서 제목을 뽑고, 독자들이 다 읽은 다음에야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았다."
일을 하다 보면 '요즘 이 말이 유행이잖아, 이 정도는 써도 괜찮아' 하는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중요한 건 글과 상황에 맞게 써야 한다는 것. 그래야 뒤탈이 없다. 아무 데나 신조어를 갖다 쓰면 안 된다. 그러나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사달이 나는 경우가 생길 때.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지난 5월 언론중재위원회(아래 언론중재위)로부터 회사로 제목 수정 권고 메일이 왔다. 이유는 제목에서 차별적인 표현을 썼다는 건데, 문제가 된 표현은 '결정장애'라는 신조어였다.
언론중재위는 메일에서 "... 장애를 부정적 비유의 대상으로 삼은 표현을 제목에 사용하였다. 비록 유사한 경우에 해당 표현이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대체 가능한 용어가 있으며 언론의 사회적 책임 내지 영향력을 고려할 때 장애에 관한 차별이나 편견, 부정적 인식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해당 표현의 사용을 삼가는 것이 타당하다. 이것은 각종 보도준칙이나 자율강령 등에서 지양할 것을 요구하는 사항이기도 하다..."라고 시정 권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걸 읽고 '아차' 혹은 '어머' 싶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를 비롯해서. 심지어 나는 그때 마침 검토하던 글의 제목을 고민하며 떠올렸던 단어이기도 해서 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단어를 떠올리기만 하고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어디선가 희미하게 '결정장애는 장애가 아닌데 써도 되나?' 싶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의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의심하고 확인하는 습관이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을 걸러준다고 믿는다.
어린이들을 낮춰 표현하는 '급식충', '잼민이'를 사용할 때, '진지충(어떤 주제든 심각하고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라는 표현을 쓰게 될 때 그 외 계속 생겨나는 신조어를 듣고 그냥 웃어넘기지 않는 것,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인지 찾아보는 것, 써도 되는 표현인지 한번 의심해 보는 것. 제목을 뽑는 일을 하거나 글 쓰는 사람이라면 꼭 챙겼으면 하는 습관이다.
이런 일은 소수의 사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게 아니다.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약간의 귀찮음을 이기면 된다. 환경오염뿐만 아니라 말과 글의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는 요즘 사회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혐오표현을 '혐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며 대항표현(혐오표현에 대해 되받아치는 말하기)을 알려야 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물으면 나는 지극히 단순하게 답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니까.
독자에게 배운 제목의 한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