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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발발, 공포 떠는 수단인들... 고통에 공감해주길"

[인터뷰] 모하메드 아담 재한 수단 난민 교민회 대표

등록 2023.05.17 18:18수정 2023.05.1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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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난민기구 서울사무소 앞 집회를 이끈 재한 수단 교민회 대표 모하메드 아담씨 ⓒ 김상준


"우크라이나와 미얀마에 대한 관심만큼만이라도, 수단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피 비린내 나는 비극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과 지원을 부탁합니다." 
 

재한 수단 교민회 대표인 모하메드 아담(43)씨가 힘주어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옆 UN난민기구 한국 사무소 앞에서 열린 '수단 반전 집회', 즉 수단 내전을 반대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한국내 체류 수단 난민에 대한 인도적 체류허가를 요청하는 집회에서였다. 

이날 집회에서는 이들의 절박함이 피켓으로도 표현됐다. 한 재한 수단 교민이 든 피켓 안에는 우크라이나와 수단의 부스 중 우크라이나 부스에만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국제적 참극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도 차이가 있는 게 아니냐는, 현실에 대한 풍자가 담긴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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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피켓에는 우크라이나, 수단의 부스가 있고 그 중 우크라이나 부스에만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국제적 참극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도 차이가 있는 현실에 대한 풍자가 담긴 그림이다. ⓒ 김상준


수단 정규군과 다른 군벌 간의 내전, 그에 따른 비극은 지난 4월 25일, 재수단 한국 동포들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거쳐 한국에 도착하면서 한국사회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진 게 사실이다(관련 기사: 수단 교민 28명 무사 귀국... 공군 수송기 서울공항 도착). 더구나 온갖 기가 막힌 국내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게 한국의 상황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지난 2012년 8월 이전까지 수단의 정치 단체인 '수단 민중 해방 운동'에서 활동하던 아담씨는 '표현의 자유' 등 수단의 정치·사회적 활동의 침해가 심해지자 한국행을 택한 데 이어 난민 지위를 획득했다. 그 뒤 아내, 두 명의 아이와 함께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다. 동시에 '수단 민중 해방 운동'의 한국, 말레이시아, 일본 지부를 총괄하고 있다고 한다.

"(주말도 아니고) 이런 평일에, 일을 해야 함에도 반차 휴가를 내고 집회에 참여한 수단인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수단의 상황이 참혹하다는 반증일 겁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또 재차 힘주어 덧붙인다.

"수단에 있는 친척, 친구들과 연락해 보니 집 밖은 총탄이 빗발쳐서 외출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하고, 전기가 끊기는 건 매일 일어나는 일상이라고 해요. 여기에 더해 그나마 비축해 둔 음식, 물 등이 떨어지면 바로 죽음이 닥쳐올 거라며 공포에 떨고 있더군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매우 위급한 상황입니다."

"재한 수단인들의 체류기간 연장 고려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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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0일 북아프리카 수단의 무력 충돌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하르툼 국제공항 상공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 AFP=연합뉴스

 
그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수단을 철권 통치했던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이 2019년 축출되자, 수단에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곧이어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잠시 들어선 과도정부마저 무너졌다고 한다. 지난 2021년 10월 수단 군부의 1인자인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과 준 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의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이 야합해 쿠데타로 무너뜨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야합도 잠시, 다시 이 두 세력이 권력 쟁취를 위해 서로 총질을 해대고 있고 그 과정에서 주민들만 피해를 입는 상황이 1개월 전부터 발생한 수단 내전이라는 설명이었다. 그간 아프리카를 주제로 만든 영화나 국제뉴스를 통해 알려진 참혹한 아프리카의 현대사가 지금 수단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식민지 침탈과 착취, 독립 이후에도 남아있는 교묘한 '디바이드 앤드 룰'(divide and rule, 분할 통치)의 악랄한 정책은 잦은 쿠데타와 내전, 그리고 아프리카 민중들의 피로 얼룩져왔다. 여기까지가 자신들의 조국, 수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아담씨의 설명이라면, 현실은 현실의 문제대로 남아있다.


"지금 한국에는 난민 신청자와 지위 획득자 70여명을 포함해 308명의 수단인들이 있다. 지난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재한 미얀마인들이 체류 허가가 만료되어 미얀마로 강제로 돌아갈 경우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당시 한국 정부가 재한 미얀마인들의 체류 기간 연장을 시행한 바 있다. 그처럼 재한 수단인들의 체류 문제, 특히 난민 신청과 지위에 대해서도 한국이 넓은 품으로 해결해 주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다. 이것이 휴머니즘에 바탕한 보편적 인도주의다."

그는 또한 "그동안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하는 외국인들이 주요하게 꼽는 민원이 있다. 예를 들어 난민 불인정을 하더라도 그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좋겠고, 심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통역사가 전문적이지 않거나 미비하다는 지적도 잦은데 부디 이를 개선했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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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난민기구 서울사무소 앞 집회에 참여한 재한 수단 난민들과 한국 시민사회단체 회원들 ⓒ 김상준

 
이날 집회에 함께 한 아담씨의 배우자는 저녁 출근을 하러 먼저 안산으로 떠나고, 돌봐야 할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누던 아담씨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요 몇 년 사이에 아프가니스탄, 예멘, 미얀마, 우크라이나 등에서 분쟁과 쿠데타,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 정부를 비롯한 국제 사회가 해당 국가의 국민들, 특히 피란민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 준 것을 잘 압니다.

수단의 경우, 이번 내전 이전부터 비극의 징조가 있었어요.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수단에 대한 관심은 다른 국가에 비해 매우 낮은 편입니다. 아무리 국제 사회가 힘의 논리로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고통은 피부색, 종교, 나이, 성별을 떠나 같은 고통이지 않나요?"

  
"한국 국민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나"라는 필자의 물음에, 그는 "정이 많은 한국인들이 저와 다수의 수단인들을 수 년 전 난민으로 인정해 주고 안착시켜 준 고마움을 잊지 못 한다. 그런데 지금 수단의 상황은 그때보다 훨씬 더 위급하고, 지금이 더 저희 재한 수단인들에게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인들의 인정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라고 답했다.

지하철 1호선 시청역으로 아들과 함께 걸어 가는 아담씨, 5월 오후 5시쯤의 햇살과 풍경은 평화로웠다. 서울광장 가장 자리의 축제 조형물 앞에 흠뻑 빠져 가지 않으려는 아들과 이를 달래며 손을 이끄는 아담씨 부자의 모습에서 평범한 행복이 잠시 엿보였다. 이 평범한 행복이 지속되게 하기 위해 한국 정부와 한국의 시민 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상준씨는 독립PD이자 힌츠페터 국제보도영상 조직위원회 위원입니다.
#아프리카 #수단 #내전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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