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

지난 8년의 덕질로 달라진 일상

등록 2023.05.25 15:58수정 2023.05.25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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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응원하는 것을 '취미'라고 말할 수 있다면, 나의 가장 오래된 취미는 '덕질'이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약 8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그룹을 좋아하면서 나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으니 어쩌면 단순한 취미를 넘어선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방탄소년단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건 한 음악 방송에서 무대를 보며 노래가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였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I Need U'였는데, 멜로디의 빠져들어 한동안 플레이리스트의 첫 곡을 담당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단순히 무대 영상을 찾아보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공식 유튜브 채널부터 V앱(지금은 위버스를 쓴다), 음악 플랫폼, SNS까지 가입한 덕질에 진심이 된 나를 발견했다.

덕질이 바꿔놓은 나의 일상

어느 순간부터는 앨범과 굿즈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발매 예정인 앨범의 예약 판매를 시작하면 결제 버튼부터 누르기 바빴고, 굿즈 역시 조금이라도 마음에 든다면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지금은 굿즈에 대한 욕심이 줄었다.)

그렇게 모이기 시작한 덕질의 결과물은 큰 박스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같은 박스를 4개나 더 구비하게 만들었다. 아직은 혼자 쓰는 방이 따로 없어 굿즈를 전시하거나 꾸미지는 못했지만, 최근에는 새로 들어온 폴딩 선반에 한 자리를 사수해 소위 말하는 '덕질존'을 만들었다.

덕질의 영향을 받은 건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여러 핑계를 대며 소홀히 했던 독서를 다시 시작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나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 읽었던 <데미안>과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융의 영혼의 지도> 등 평소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책들을 읽기도 했고, 멤버들이 추천한 다양한 책(<사물의 뒷모습>, <아몬드>, <방구석 미술관> 등)을 직접 찾아보며 읽고 공감하기도 했다.

박물관과 전시회를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것도 덕질의 영향이 컸다. 멤버들이 올려주는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보던 중 내 취향의 작품을 발견하면 장소가 조금 멀더라도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직접 전시와 특별전을 찾아다니는 경우도 많아졌다. 미술 분야는 잘 몰랐던 내가 올라오는 사진 속 그림을 알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관련 서적을 찾아 읽었고, 어려운 용어들을 하나씩 배워가기도 했다.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점점 방탄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국외로 나가는 일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영어로 된 영상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번역이 된 영상들을 보며 버텼지만, 번역 없이 올라오는 영상들은 다른 팬분들이 번역본을 올려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생방송이나 실시간 영상을 볼 때는 자막이 없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영어 회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멤버들의 UN 연설이 확정되면서 의지를 더 불태우기도 했었다. 여전히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하지만, 전보다 더 많은 문장을 알아듣게 됐다는 점은 뿌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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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박물관, 전시회 ⓒ 한재아


나에게 있어 덕질은 어두운 미로 끝에 있는 출구와 같았다. 이렇다 할 취미도, 관심도 없이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에 잠식되어 있던 나를 찾아와 세상과 사람에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때부터 나는 무채색의 도화지에 색을 덧칠하기 시작했다. 

덕질과 관련된 활동을 시작으로 점차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와 온도를 찾았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적은 곳을,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한 곳보다는 조용한 곳을,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보다는 차분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단, 콘서트는 논외다).

그렇게 나에 대해 알아갈수록 취미도, 관심도 하나씩 늘어갔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조명을 달고, 벽지를 붙이듯이 천천히 조금씩 '나'라는 공간을 채워넣었고, 한 번씩 찾아오는 우울감에 휩쓸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덕질을 하고 있다. 지금은 7명이 개인 활동을 시작한 뒤 nn개로 나어진 수많은 영상과 기사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개인 앨범과 협업 곡을 들으며 출퇴근을 하고, 컨텐츠 영상을 보며 밥을 먹고, 잠들기 전 SNS와 사진을 찾아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지금은 멤버 슈가의 단독 콘서트 투어가 진행 중이라 아침에 눈을 뜨면 올라오는 공연 영상을 보며 잠에서 깨고 있다. 여전히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다.

며칠 전, 위버스에 올라온 글 하나가 아직 마음에 남아있다. 긴 편지 속에 담긴 진심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와 소식을 전해주고, 우리(팬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멤버들이 끊임없이 표현해주는 애정과 사랑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부터 걱정과 고민이 많았다. 아직 세상에는 듣고 싶은 것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과 누군가의 애정을 멋대로 재단하고 가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오랜 시간 좋아한 만큼 다양한 이유로 욕을 먹거나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인기가 많아질수록,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와 별개로 누군가가 상처를 받는 건 여전히 속상한 일이었다. 아무 잘못 없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을 들을 때도, 수없이 많은 부조리한 일을 경험할 때도, 진심을 이용당하는 순간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지독한 무력감에 절망할 때도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그런 사람과 상황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럴수록 더 많이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진 악의보다 내가 보내는 사랑이 더 강하기를 바라면서.

아직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며 묵묵히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나의 비빌 언덕이 되어준 나의 아티스트에게 오늘도 어김없이 사랑과 응원을 보낸다. 부디 오늘도 아무 일 없이 안녕하길.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방탄 #아미 #서로의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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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흘러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20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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