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재 신청의 벽, 저임금 노동자에겐 언감생심

등록 2023.05.26 10:56수정 2023.05.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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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쥘 때마다 손목이 지끈거리고, 매일 아침 저리는 손과 팔을 붙잡고 주무르기 급급하다. 손목-팔-어깨까지 뻐근하다. 아르바이트 3일을 연달아서 하게 되면 이 불편한 고통이 찾아온다. 지속적인 고통에 결국 정형외과를 찾은 나는 손목터널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고 손목부상으로도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다행히 손목터널증후군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분류되어 산재처리는 가능하다. 하지만 근골격계 질환이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신체부담업무를 수행했다가 근골격계 질환이 발생하였음을 입증해야 한다.

즉, 일하다가 다쳤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자료에는 일한 기간과 시간확인이 가능한 출퇴근 기록, 일의 양과 강도, 업무 수행 자세 및 속도를 알 수 있는 사진 및 동영상, 진단서 등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산재 신청을 할 수 없었다. 골절이나 화상, 절단 등 심각한 사고가 아닌 손목터널증후군의 경우 인과관계를 밝히는 소명과정이 복잡해 산재 처리가 승인될지 확신할 수 없다.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산재 처리 기간이 평균 4개월 정도 소요되는데 무작정 휴직을 하고 치료를 받는 것은 생계부담으로 다가왔다. 또한 산재를 입증할 자료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사장님과의 관계가 불편해지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실제로 많은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꺼리는 이유는 '사업주와의 갈등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2018년 이후 사업주의 허락과 관계없이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곤 하지만 소규모 아르바이트 사업장에서는 골절, 화상 등이 아닌 미미한 상처나 부상으로 산재를 신청하기엔 그 벽이 너무 높다.

지난해 규제개혁위원회가 근골격계 질환 산재를 보다 신속히 처리하는 내용의 '추정의 원칙 개정안' 심의를 진행했다. 추정의 원칙은 명백히 작업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는 질병과 작업에 대해 일정 기간 작업경력이 인정될 시, 현장 재해조사 절차를 생략하고 산재를 신속하게 인정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산재 처리 과정이 지나치게 오래 걸려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민주노총의 '추정의 원칙' 확대 및 법제화 요구에 노동부가 합의해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심의 과정에서 사업주 편향적인 내용으로 고시 내용을 뒤바꿔 원안의 취지를 퇴색하는 개정 고시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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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시위 ⓒ 유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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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이 잘 반영되었다면, 나도 어렵지 않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사업장에는 나뿐만 아니라 손목보호대를 하고 다니는 노동자, 사전에 손목에 무리가 가는 업무를 배제해달라고 요청한 노동자 등이 있다.

모두 산재 신청을 통해 치료 받을 수 있었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조기에 치료받고 업무에 복귀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역할일까? 산재신청의 절차를 간소화했다고 하더라도 승인과정에 필요한 입증을 노동자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

사전에 근골격계질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직업병이 발생한 노동자가 빨리 치료를 받아 다시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한다.
#산재 #직업병 #알바노동 #알바 #알바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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