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병과예비학생 졸업 후 소위 임관을 앞둔 히로토 씨(1944년 12월, 23세) "역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은, 그것은, 대관절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하고. 안 그래요? 그것은 역시 일본의, 그렇게 하면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는 것은, 일본을 위한, 모두를 위한 죽음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죽는다는 것은 모두를 위해 죽는 것이다라고. 그렇죠? 따라서 ‘모두가 나를 위해 마음으로 기도해줄 것이다’라는 마음이겠죠. 그래서 '헤어져 죽더라도, 꽃의 도성 야스쿠니 신사, 봄의 가지에 피어 만나자’라고, 모두 노래한 것이지요. 네, 눈물을 흘리면서. 노래하는 거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거군요. 확실히 말하면, 그런 것입니다. 기쁘게, 기꺼이 용감하게 야스쿠니 신사에 가는 것과는 다르죠. 그렇죠? 다들 살고 싶었어요."(<너희는 죽으면 야스쿠니에 간다>144p)
히로토 씨 제공
전쟁이 끝이 난지 8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당시에도 답을 찾지 못했던 전쟁의 의미에 대해, 더 나아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관한 책임을 한국인 필자와 논한다는 것은 히로토씨에게 있어 난처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역시 정책의 기획자 입장이 아니라 국가공권력에 의한 동원 대상이었을 뿐이다. 그런 입장에서, 국가의 책임이나 더 나아가 그 국가의 일원이었던 스스로의 책임에 대해 옛 식민지 지역 출신자의 질문으로부터 성찰해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처음에 히로토씨는 '도조 히데키에게 따져야 할 일을 내가 어찌 대답하겠나'며 손사래를 쳤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과거사를 두고 제기되는 정치적 요구들에 대해서도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겼던 히로토씨는 러일전쟁(일러전쟁)의 예를 들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중국인들 입장에서는 일본에 할말이 많을 것입니다. 일러전쟁만 해도, 가장 큰 피해자는 중국입니다. 일본은 자존자위를 위해 러시아와 전쟁을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전장이 된 것은 러시아 땅이나 일본 땅도 아닌 중국 땅이었습니다. 아무 죄도 없던 중국인들이 두 강대국의 힘싸움에 휘말린 것입니다. 그래요. 일본이 나쁜 짓을 했다고 생각해요."
과거사 문제로 여전히 일본에 반감을 품는 중국인들이나 한국인들의 반응을 히로토 씨는 이해한다고 하셨다. 피해를 당했던 입장에서는 지난날을 바라보는 입장이 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이 지점에서 히로토씨는 일본 사회의 무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은 전쟁에 직접 나갔던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시대니까, 지금 세대 입장에서는 '우리가 한 일도 아닌데 왜 우리가 사죄하냐'는 입장이 되어버리는 거죠. '내가 뭘 했는데?' 이런 식으로. 우리 애들만 봐도, 학교에서 역사 교육이라는 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 무책임한거죠. 무책임하고 비겁한 겁니다. 물론 역사라는 게 승자의 역사이고 또 누가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죠. 일본에서도 역사수정주의자들이 교과서를 만들어서 문제가 되었잖아요. 미래지향적으로 가야하는데. 같은 인간이잖아요? 국가들끼리 교류하고 이해를 늘리며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각 국가들이 내세우는 대의명분들 속에서, 분쟁과 전쟁을 일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히로토씨는 말했다.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중국인과 대만인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좁혀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그 자신도 옛 전쟁에서는 스스로의 참전을 '조국'이나 '동양평화'를 위한 것으로, 자신의 전사를 '일본의 모두를 위한 것'으로 굳게 믿었으니 말이다. 각자가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충돌하는 데 어떻게 전쟁을 없앨 수 있겠냐는 것이 히로토씨의 회의적인 세계관이었다.
그럼에도, 평화를 염원하는 다음 세대의 노력에 대해 그는 실낱 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전쟁체험을 들려준 이유는 미래세대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때의 전쟁이 침략전쟁이었고 거기에 나간 저의 책임에 대해 논한다고 해도, 사실 저는 뭐라 말을 할 입장이 아닙니다. 저는 살아온 지 한 세기가 넘어서 이제는 인생의 목적조차 잃은 채 죽어가는 노인일 뿐입니다. 저는 그저 제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겪었는지 말씀드릴 뿐이고, 저의 체험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것은 미래세대의 몫입니다."
인간의 존엄성보다도 우선되던 국가와 민족의 대의명분 아래 병정으로 빚어져 전장으로 향했던 세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말고는 애당초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세대에게 역사적 책임을 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어쩌면 가능하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결사의 세대' 당사자로서 지나간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논하는 히로토씨의 이야기에는 분명 울림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울림있는 이야기를 한국인인 필자가 청취하고 기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균형 있는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이를 냉정히 평가하고, 그 교훈을 우리의 앞날에 반영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제를, '각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국가의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 견지에서 이루어가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야 말로 필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히로토씨의 진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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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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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교육은..." 학도병 출신 102세 할아버지의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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