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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2000원짜리 반티 한 장... 악덕 업체를 고발합니다

사이즈 맞지 않아 교환 신청했더니, 연락 끊겨... 내용증명 보내며 바로잡기

등록 2023.06.04 19:55수정 2023.06.05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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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 때 입기 위해 맞춘 학급 단체 티셔츠(반티)의 사이즈가 맞지 않아 교환을 요청했지만 답이 없었다 ⓒ 픽사베이

    
"선생님, 그냥 X밟았다고 생각할게요."

풀이 죽은 한 아이의 이 말이 발단이었다. 체육대회 때 입기 위해 맞춘 학급 단체 티셔츠(반티)의 사이즈가 맞지 않아 교환을 요청했다가 주문업체로부터 불가하다는 답변을 들었단다. 교환은 물론, 환불도 안 된다고 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반티에 번호나 이름 등 아무것도 써넣지 않은 기성품이라 반품 비용만 부담하면 문제없을 거라고 다독였다. 애초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다면 일정 기한 내라면 교환이나 환불을 해주는 게 상식이다. 물론, 아이가 인터넷 쇼핑을 통해 구매했으니 계약서를 썼을 리 만무하다.

내 말에 용기를 얻은 그는 판매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교환을 요구하는 문자를 보냈으나 '읽씹'을 당했다며 불쾌해했다. 설마 그랬으랴 싶어, 내용을 정확히 적었는지, 또 업체 전화번호가 맞는지 재차 확인해 보라고 했다. 이후 학급 담임교사로서 그의 대리인을 자청했다.

차라리 어른인 내가 당했다면 몇 푼 안 되는 돈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업체가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가지고 장난친다는 생각에 너무나 괘씸했다. 어른이 전화를 걸어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해도 과연 나 몰라라 할까 싶어 직접 나섰다.

교환해주겠다더니... 연락끊긴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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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비자원에 제출하기 위한 피해구제 신청서와 각종 증빙서류들. 연락을 끊은 해당 업체의 주소를 들고 당장 휴가를 내서 서울로 올라갈 생각까지 했다. ⓒ 서부원

"반티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면, 교환이 가능합니다."

학급 담임교사임을 밝혀서였을까. 업체 담당자의 답변은 흔쾌했다. 젖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잘 포장해서 곧장 소포로 보내드리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그 통화는 업체와 나눈 처음이자 마지막 연락이 됐다. 이후 업체는 그 어떤 전화나 문자도 받질 않았다.

아무런 연락이 없어 전화를 건 건 그로부터 열흘쯤 지나고서다. 처음엔 배달 사고가 난 줄 알고 등기우편 발송 영수증을 확인하고 우체국을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일 연락했지만, 신호음은 가는데 받질 않았고 카톡 문자는 '1'이라는 숫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매일 수업도 해야 하고 잡무도 처리해야 하는데, 도통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전과 오후, 짬이 날 때마다 업체에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는 게 하나의 업무가 돼버렸다. 혹시 내 휴대전화 번호를 차단했나 싶어 교무실과 퇴근한 뒤 집 전화로도 걸어보았으나 허사였다.

결국 법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우선, 업체에 우편으로 지금까지의 경과와 요구 사항을 적어 '내용 증명'을 보냈다. 동시에 한국소비자원에 상담을 요청하고,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양식을 내려받고 보니 작성해야 할 내용과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었다.

몇 해 전에도 소비자원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난 뒤 보험사가 알선한 공업사의 부실한 수리에 문제를 제기한 뒤 소비자원의 중재로 보상을 받아냈다. <오마이뉴스>에 관련 기사를 쓴 뒤 해당 공업사가 어딘지 알려달라는 메일을 수백 통 받기도 했다.

"맘 편히 그냥 적선했다고 생각하시죠. 그러잖아도 수업과 업무에 치이는데 그깟 반티 한 장 때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 교사도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애면글면하는 내 모습이 가여웠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반티 한 벌 값이 배송비를 포함해 고작 2만 2000원이다. 설령 그 돈을 돌려받는다고 해도, 지금껏 쏟은 노력과 받은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다.

소포를 보내고, 등기우편으로 '내용 증명'과 피해구제 신청 서류 등을 발송하는 데만 2만 원 가까운 비용을 치렀다. 내용을 작성하고, 서류를 일일이 챙기는 건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이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고, 더더욱 여기서 멈출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소비자원의 중재도 거부하면 소액 재판까지 끌고 갈 테고, 어떻게든 끝장을 볼 것이다. 교사에겐 이번 사안은 '민사(民事)'가 아닌 '교육'의 영역에 속한다. 소비자를 속이고 의무를 저버린 악덕 업체를 용인하는 건, 우리 사회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기업이든 사람이든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언정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합당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실감하도록 해줘야 한다. 정의가 불의를 이기고, 법이 정의의 편임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본령이라고 믿는다.

기성세대가 불의를 보고도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자꾸만 회피하려 한다면, 아이들 역시 불의에 눈감고 정의를 조롱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다. 저들이 불의를 저지르고도 뻔뻔할 수 있는 건, 그런데도 별 탈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세대 아이들이 올곧은 시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면, '귀차니즘'을 떨치고 불의에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아이들과 공유했다. "그냥 × 밟았다고 생각하겠다"던 아이도 이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어리다고 무시하고 아이들을 등쳐먹는 나쁜 어른들은 응징해야 한다며 아우성친다. 이러한 반 아이들의 불의에 대한 감수성은 22,000원짜리 반티 한 장이 몰고 온 긍정적인 '나비 효과'다.

개인적으론 반티를 교환 받거나 2만 2000원을 돌려받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진 않다. 그동안 쏟아부은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해당 업체가 계속 사업을 하도록 허용하는 게 맞나 싶어서다.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이번 사안과 유사한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그릇된 행태를 아이들과 함께 직접 경험한 소비자로서 불매 운동을 제안한다. 물론, 이곳에 해당 악덕 업체의 상호명과 연락을 끊은 담당자의 이름, 연락처 등을 공개할 수는 없다. 만약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메일을 통해서 개별적으로 알려드리려 한다.

누구라도 개인정보는 소중하고, 법의 잣대는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을 가로챈 뒤 나 몰라라 하는 악덕 업체까지 보호해 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우리 사회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을 부추겼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죄질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교환 및 환불 규정 #한국소비자원 #내용 증명 #귀차니즘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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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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