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사진)
국가보훈처
박 백암에 대한 만사
표연히 바람에 나부끼어 구르던 잎 하나
와신상담의 생애 몇 십년
가난한 동포 비호하려도 광화천만간이 없고
완악한 꿈 외쳐 깨우는 필여장면이 있었네
반 국 바둑도 못 마치나 정신 더욱 완고하고
석잔 술 주량도 못 미치니 덕성 더욱 온전했네
목숨 다하여 돌아갈거나, 어느 곳으로 돌아가나
미친 먼지 닿지 않는 천제의 고을이시기를. (주석 1)
고향의 종친회에서 1926년 안동 도곡에 있는 산소의 비(碑)를 바꾸는 공사를 준비하면서 장손인 이상룡에게 비문은 의뢰하였다. 다음은 이에 대한 답신 <고향 여러 종족에게>중에서 종중의 관계 아닌 앞 부분이다. 이 시기 그의 심기가 읽힌다.
지난 봄 한 번 편지 한 후 다시 아득히 막혀버리니 고향 산천을 바라보매 다만 스스로 답답할 뿐입니다. 가을이 깊어 가는데 여러분들 기거 만중하신지요? 외도(外陶) 감호(鑑湖)의 흉보(凶報)는 얼마나 참혹하겠습니까? 가을걷이는 고루 풍성하여 공사간에 유감이 없으신지요? 구구한 저의 울적한 마음 두루 간절합니다.
저는 지난 가을 우연히 실속 없는 헛된 명성에 얽매여, 만리 길 상해를 다녀왔고, 세모(歲暮)는 북경 여관에서 보냈지요. 금년 중춘에야 비로소 산채로 돌아왔는데 이내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을 보여, 앉고 눕는 것이 불편하여 탕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17년간 습기가 많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기가 서린 바다에서 얻은 병일 것입니다. 척서군도 황달로 신음하고 있으며 섭아(燮兒)의 병도 아직 쾌차하지 못하였습니다. 심경이 이러하니 어찌 세상사는 경황이 조금인들 있겠습니까? (주석 2)
주석
1> <석주유고(상)>, 241쪽.
2> <석주유고(상)>, 50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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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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