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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아토피로 찾은 양평서 만난 운명의 규방공예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14] 조민숙 규방공예가

등록 2023.06.27 10:32수정 2023.06.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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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민숙 규방공예가.
조민숙 규방공예가.최방식

"둘째 아토피 때문에 양평으로 왔어요. 어느 날 전통바느질 전시회에 갔다 꽂혔죠. 아이 고질병으로 고통스러운 때였는데, 얼마 만에 느끼는 평화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규방공예를 하며 치유받고 있습니다. 전통자수는 그렇게 제게 도(道)가 됐나 봐요."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 열네 번째 주인공 규방공예가 조민숙 토리규방공예 대표(56·여)의 말이다. 26일 오후 양평 용문에 있는 공방에서 만난 그는 바느질도(道)를 기자에게 설파했다. 그렇게 그는 삶을 성찰하고, 아픔을 치유하며, 앞날을 헤쳐 나가는 동력을 찾는다고 했다.


전통바느질 전시회에 우연히 갔다가

규방공예에 빠져든 계기를 묻자 우연이라고 했다. 김포 살다 둘째 아이의 아토피로 양평으로 내려온 게 계기. 남편(교사) 전보를 2년여 기다린 마흔 살 때다. 서양 바느질인 퀼트만 알고 있던 그는 전통바느질 전시회를 갔다가 한눈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순간 너무 좋았어요. 마음의 평화를 얻은 느낌요. 아이 아픔으로 도시 생활이 고통스러웠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늘 불안 속에 살았거든요. 한 번 해보자 다짐했죠.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를 찾아갔어요. 문화재청 산하 한국문화재재단이 운영하는 공기관이죠. 김현희 자수명장을 만나 7년간 도제수업을 했어요."

보자기 전통자수를 배운 것이다. 보자기를 뜻하는 복(袱)은 복(福)과 통한다고 믿어져 복을 쌓는 것이란 속설에, 보자기 자수는 규방공예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중국과는 또 다른 한국의 작품세계를 높이는 노력을 해보자는 판단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전통자수(보자기)가 발전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하겠더라고요. 바느질이라는 게 생활 속에서 늘 봐왔던 것(익숙함)이다 보니 특별하지 않고 예술(공예)로 보이지도 않는 것이죠. 하지만 그 세계로 들어와 보니 완전 딴판이었어요. 할수록 더 어려워졌거든요."
 
 조 규방공예가의 작품들.
조 규방공예가의 작품들.최방식

김 명장 도제교육을 받으며 2년마다 회원전을 했다. 김현희자수보자기연구회가 주최하는 행사였는데 3번을 참여했다. 그러면서 양평에 2014년 공방을 개설했다. 배운 자수를 이웃에게 전달(교육)하고 작품 활동을 하려고 강습소를 차린 것. 제자그룹으로 양평규방공예연구회를 결성했다.


"초급과 심화과정으로 운영하죠. 초급은 바늘 잡는 기술과 옷감을 구별하는 교육. 심화과정은 작품을 재현하는 기술을 전수하죠. 구도를 잡고 색감을 익혀 배합하고 바늘땀을 정확하게 익혀 작품성을 높이는 것이죠. 6차례나 단체전을 가졌어요."

제자그룹에서 대한민국 공예대전에 출품해 우수상, 특별상,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20여 명이 그로부터 도제교육을 받았는데, 12명이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6월 3~16일에도 양평 서종면에 있는 북한강갤러리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11명이 35점의 작품을 냈고, 3백여 명이 다녀갔다.


"지역 관람객, 지나가던 사람, 그리고 규방공예 관심자들이 왔을 텐데 입소문이 대단했어요. 예술성이 최고다, 어머니 향수를 자극한다 등. 갤러리 측도 서양미술 전시회가 80~90%이고, 전통공예로는 처음인데 결과가 좋다는 반응을 내놨어요."

2016년 개인전(40여 점 출품)은 용문의 한 커피숍에서 열었다. 반응 역시 좋았다. 하지만 그는 개인전 보다 단체전에 몰두한다. 제자그룹의 경우 언제 활동을 중단할 지 알 수 없어 그들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을 때 전시회를 열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이다.

대중성 찾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하는 이유
 
 조 규방공예가의 작품들.
조 규방공예가의 작품들.최방식

"제자그룹과 강습·협업을 하다보면 배우는 게 참 많아요. 작품 완성도가 높아지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개인간의 깊은 교감을 할 수 있어요. 삶을 성찰하고, 아픔을 치유하며, 앞에 놓인 어려움을 풀어갈 힘을 얻거든요. 가르치는 것보다 배우는 게 더 많아요. 바느질도(道)라고 하고 싶어요."

개인전을 할 때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인 건 확실한데, 사회운동을 하던 자신이 규방공예(봉건사회 중상층 여성들이 하던)를 하는 게 괜찮을까 싶어 방황했던 것. 그때 전시회에 찾아온 한 후배의 말에 힘입어 계속할 수 있었다. "언니, 왜 진보적인 이들은 도덕결벽증이 그리 심한지 몰라."

경제적 문제를 묻자, '남편덕'이라 했다. 지금도 출근할 때 남편에게 "자아실현 열심히 하고 올게요"라고 인사하는 걸 잊지 않는단다. 대중성을 찾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작품 판매는 포기하고 산다고 했다. 제자그룹 수강료로 사무실 운영비 충당하는 게 고작.

"가족의 전폭적 지지가 없었다면 공방을 유지하기 어려웠죠. 재정난을 겪을 때마다 그만두려고 여러 번 고민했지만 '지금까지 해온 게, 그 아름다운 작품이 너무 아깝다'는 반응에 기운을 얻어 못 그만 뒀죠. 남편 월급으로 생계를 꾸렸는데, 아이들도 별 탈 없이 학업을 마치고 취업해 잘 살고 있어요."

전통공예를 왜 양평에서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제자그룹 한 회원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 방문 몇 시간 전 한 회원이 다녀갔는데, "공방에 오래 다니려고 알바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해 울컥했단다. 규방공예를 서울에서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자신이라도 깨야 할 것 같아 고집스럽게 양평에서 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제자 회원들이 세포분열을 하는 걸 도우려고 합니다.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도록요. 원하는 분 있으면 제 기술을 모두 전승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협업하는 걸 기록(사진, 에세이 출판)으로 남기고도 싶어요."

매듭의 설화가 떠올랐다. 고르디우스 매듭을 푸는 자가 왕이 될 것이란 전설. 동방원정을 앞둔 알렉산드로스 3세가 풀려다 안 되자 단칼에 잘라버려 해결했다는 이야기. 2천여년 전 북위(北魏) 한 군주가 아들들에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라 하자 칼로 잘라버렸다는 한 아들의 '쾌도난마'(快刀亂麻)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조 규방공예가의 작품들.
조 규방공예가의 작품들.최방식

사회운동의 자양분이 어디서 왔는지를 묻자, 일제강점기 말 만주에 있다 귀향한 아버지의 영향이라고 했다. 술 한 잔 하면 늘 하는 넋두리, 그 속에 담긴 민족의식. 그 때문인지 임수경 방북(1989년) 때 그는 스스로 찾아가 수원사랑민주청년회에 가입했다. 거기서 남편도 만났다. 남편은 이후 교사(전교조 활동) 발령을 받았다.

남편은 지역사회와 교사 운동을 변치 않고 잘 하고 있으며, 여러 고난에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갈 길을 가고 있다고 했다. 첫째는 대안학교를 거쳐 사회에 진출해 살고 있고, 둘째는 양평에 와 아토피를 치료하고 학업을 마친 뒤 역시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

그는 양평에서 전통공예 확산 뿐 아니라 전통시장 활성화에도 앞섰다. 문화부와 경기도 지원을 받아 양평군이 추진한 '청개구리 마켓'(매주 토, 농산물 수공예품 등 판매)의 매니저(현장 책임자) 역할도 했다. 잘 되다 코로나19로 6개월만에 문을 닫았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저널 게재.
#여주양평문화예술인 #조민숙 #규방공예가 #전통바느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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