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그냥 기사 검토 속도가 늦다, 오탈자가 많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 것을.
elements.envato
취재기자에서 편집기자로 넘어온 후배들은 달랐다. 기사 검토 상태가 좋지 않으면 나쁘다거나, 검토 속도가 너무 늦으면 늦는다고 있는 그대로 말해주면 되는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띠용. 현타가 왔다. 나는 "이 기사 아직 안 본 거지?"라는 말은 잘 안 쓰는데 "그 기사 문제 있니?"라는 말은 종종 했다. 기사 하나를 처리하는 속도는 기사마다 다르지만 한 기사를 오랫동안 검토한다는 건 기사에 확인할 게 많거나, 시민기자와 소통 중이거나, 소통이 잘 안되고 있다거나,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거니까.
그리 긴 기사도 아니고 확인이 필요한 내용도 아닌 기사를 오래 보고 있을 때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기사에 혹시 문제가 있니?" 질책의 마음이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다. 물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들릴(혹은 들을) 수도 있겠지만(이래서 카톡 음성 지원이 필요해).
뉘앙스라는 그 섬세한 느낌을 전혀 알 리 없는 카톡을 사용하는 탓에 말하면서도 조마조마하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말이고. 그런데 후배 말을 듣고 보니 나도 그럴 필요가 없는 거였다. 생각해 보니 원치 않는 배려였다. 원치 않는 배려는 배려가 아니라고 하잖나.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그냥 기사 검토 속도가 늦다, 오탈자가 많다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걸. 나 역시 주니어 시절에 선배들이 그냥 던진 말의 의도를 해석하느라 전전긍긍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후로는 그냥 직접적으로 물어볼 때도 있다.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이유를 묻는 것이므로. "오탈자가 조금 많네" 혹은 "기사를 한 시간 넘게 보는 이유가 있을까?"라고. 내 입장에서는 조심 하느라 할 말을 제때 못 하는 일이 없도록, 후배 입장에서는 의도를 해석하느라 쓸데없이 감정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물론 '아' 다르게 말하고 '어' 다르게 말해도 다 같은 '아'로 듣고 다 같은 '어'로 듣는 경우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게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사람은 아무리 배려하고 조심해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지만 그래도 함께 사는 세상, 웬만하면 진심을 잘 전달하고 싶다. 오해가 쌓이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으니까.
편집의 동사, 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