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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경찰관이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만났을 때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로 본 범죄 유형과 예방법

등록 2023.07.13 09:09수정 2023.07.1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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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 무전기 보안상 일부 모자이크 처리 ⓒ 박승일


필자는 서울 소재 경찰서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일선 경찰관이다. 며칠 전 현장에 출동했을 때의 일이다.

지구대 내부에는 112 신고가 접수되면 신고 내용이 모니터에 현출되고 신고 유형별(흔히 말하는 코드명. 중요한 긴급 사건부터 상담문의까지 4종류로 구분)로 알림음이 울린다. 그때도 요란한 알림음과 함께 보이스피싱 신고가 접수됐다.

"보이스피싱 당했다. ○○저축은행에서 이자를 낮게 해준다고 해서 어제 △△시청에서 만나 4천만 원을 건넸고 오늘 조금 전 3천만 원을 또 건넸다'는 신고였다. 현장으로 순찰차와 함께 필자도 출동했다.

60대 아주머니는 세상 잃은 표정으로 경찰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고 전파한 뒤 상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구체적인 초동 조치에 대한 진행 과정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런 경우 신속한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아주머니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결국 눈물을 보였다. 함께 출동한 경찰이 먼저 위로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남편이 작년, 회사가 코로나로 어려워지고 퇴직을 했어요. 개인택시를 하려고 보니 1억 이상이 필요해 시집 간 딸들이 대출해서 보태줬어요. 올해 초 딸들에게 미안해 남편과 고민 끝에 카드론(장기 카드대출) 7천만 원을 대출 받았어요."

사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유사한 범죄가 많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가끔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도 이런 사연을 듣다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런데 며칠 전 이자를 저렴하게 해주겠다고, 시청 로비에서 만나자고 하니까 철석같이 믿었어요"라며 주저앉았다.
 
필자도 처음이었다. 다양한 장소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이 접근하지만 시청 1층 로비에서 범죄를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만큼 보이스피싱은 대범해지고 있다.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주변 지인들에게 현금 7천만 원을 빌리게 되었고 이제는 빚이 1억 4천만 원으로 2배가 되었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자녀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대출을 했고 이자를 조금이라도 아껴보겠다는 생각에 범죄 조직에 이용당하고 말았다.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관들도 이런 사연을 접할 때마다 화가 나고 어르신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곤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수백 번을 들었다. '은행은 절대로 직접 만나 현금을 교환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끊이지 않고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 글을 본 당신! 오늘 한 번 더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보자. 그리고 다 알고 계신다고 잔소리를 하더라도 묵묵히 한 번 더 말씀드려보자. 그것이 가장 정확한 범죄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 #범죄예방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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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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