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창 너머궁전 밖 풍경을 따라가다보면 알바이신 지구에서 알함브라를 바라봤던 전망대도 찾아볼 수 있다.
유종선
세비야까지는 고속버스였다. 버스 터미널 근처에서 무거운 짐을 이끌고 가서 햄버거를 샀다. 햄버거를 주문할 수 있는 곳까지 짐을 들고 갈 수가 없어서, 짐과 함께 우주를 자리에 앉혀놓고 혼자 주문대 앞에 섰다.
이것도 만 7세 아들과 아빠에겐 위험 부담이 있는 모험이라, 끊임 없이 고개를 양쪽으로 돌려가며 아이를 시야 안에 두고 햄버거를 구했다. 시간에 맞춰 고속버스에 올랐다. 난 우주에게 노래를 들려주기도 하고 세비야에 대해 검색도 하며 안달루시아의 일몰을 지켜보았다.
버스에서 노래도 듣고 정보도 찾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인터넷 데이터. 고속버스에 내려서 숙소까지 길을 찾으려면 지도가 켜져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배터리와 인터넷 데이터가 남아 있어야 한다. 나는 충분히 남겼다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충분하지는 않고, 운이 없을 경우라면 아슬아슬하게 맞을 만큼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은 없었다.
세비야의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예약된 숙소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였다. 이걸 택시 타기엔 또 아까웠다. 다시금 걷기를 선택했다. 우주와 나의 휴대폰은 두 개 다 배터리가 많이 남지 않은 상태라, 일단 우주 것으로 지도를 보고 혹시 방전되면 내 것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주의 것은 생각보다 급격히 방전되었다. 내 휴대폰의 지도를 켰다. 배터리는 버틸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데이터였다. 남아 있는 데이터가 너무 적었다. 새로운 도시에 어두운 밤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적대적으로 보인다. 그 곳에선 스마트폰 데이터와 배터리만이 희망의 등불이다. 그리고 그 등불은 꺼져가고 있었다.
숙소와 100미터 안쪽으로 거리가 좁혀졌는데, 갑자기 지도가 방황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지도 없이도 찾아갈 법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도앱이 헤매기 시작한 장소는 거대한 광장이었다. 그 광장은 여러 개의 찻길과 여러 개의 촘촘한 골목으로 나무 뿌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 길 끝은 모두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도저히 감으로 찾을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지도는 조금씩 틀어진 길을 가르쳐주는가 싶더니, 급기야 격자 무늬로 변해 버렸다. 데이터가 소진된 것이다. 거기에 배터리까지 급격히 낮아졌다. 선구매했던 인터넷 데이터가 소진되면 아주 느린 셀룰러 데이터로 전환된다.
사실상 검색이 불가능한 속도의 인터넷이다. 지도 로딩은 오래 기다려도 희망이 있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배터리가 그 시간을 기다려 줄 수가 없을 것이다. 신이시여 왜 이런 위기를, 아니 내가 자초했지.
광장 중앙의 분수대에 걸터 앉아 속살을 드러내듯 큰 트렁크를 열었다. 빨랫감을 헤쳐 노트북을 꺼내 폰과 연결해서 배터리의 생명을 연장했다. 주변의 와이파이는 기대할 수 없었다. 사각형의 좌표 무늬는 느릿느릿 퍼즐 완성하듯 다시 그 지역의 지도를 띄웠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방향을 점지 받아 다시 트렁크를 닫고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매우 좁은 골목에 있었다. 지도앱은 헤매며 여기 저기를 방향을 잘못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건 데이터의 문제도 아니었다. 좁은 골목은 하나가 아니었고, 그나마 숙소 비슷한 문이 보이는 곳에 걸린 간판은 내가 예약한 숙소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러나 겹치는 단어는 있었다.
그라나다에서 숙소 이름이 예약 앱에 표기된 이름과 달랐던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더 당황했을 것이다. 어쨌든 내가 가진 정보들을 바탕으로 몇 가지 가능성을 소거한 결과 이 곳이 맞는 숙소라는 확신이 들었다. 작은 호스텔이었다.
끝까지 나한테 이러기야
그런데 문제는 이 호스텔은 관리인이 업무 시간 이후엔 퇴근하는 형태였다는 점이다. 메일로 온 출입 방법과 문 앞의 출입 패널이 조금 달랐다. 두 번 실패하고 나자 혹시 이곳이 아니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더럭 들었다. 그 때 마침, 안에서 한 여행객 커플이 나왔다. 천만 다행이었다. 등대도 정신력도 다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방으로 가는 복도는 매우 비좁은 오르막이었다. 방은 광각렌즈로 찍은 소개 사진으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좁았다. 화장실이 침대보다 세 계단 위 문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라나다의 숙소와는 극단적인 차이였다.
그렇게 좋을 필요도, 이렇게 별로일 필요도 없는데. 괜찮아 우주야. 잠만 자고 내일 아침에 바로 나갈 건데 뭐. 숙소앱의 사진과 설명, 가격만으로는 아직도 숙소의 질을 판단하기 참 힘들다. 공간이 너무 좁아 일단 나라도 먼저 씻고 나와야 할 것 같아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우주야 씻어라… 말하며 화장실을 나오는 순간 미끄덩, 하늘을 날았다. 바닥이 대리석처럼 미끄러운 재질이었다. 몸이 가로로 붕 뜨는 순간이 초현실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세 개의 계단 중 마지막 계단의 모서리에 쿵 떨어졌다. 허리와 오른쪽 팔꿈치에 강렬한 통증이 엄습했다. 비명이 나왔다. 악!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