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과 대종교 활동(전시물 사진 재촬영)
박상준
1933년에는 발해의 고도인 중국 영안 동경성에서 발해농장 경영에 착수하였다. 이 곳은 표면적으로는 농지개간사업을 하는 농장이었으나 실제로는 국외 독립운동기지였다. 그는 1911년 대종교에 입교한 이래 1934년 대종교총본사가 동경성으로 옮겨오자 대종교 주요 인물로 활동하다가 1942년 일경에 체포되었다. 선생은 삶의 전부를 바쳐 조국과 민족을 위해 활동하다가 해방 2년 전 1943년에 순국하였다. 해방이 된 후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한 후에야 안희제의 독립운동을 위한 활동이 소상히 밝혀졌다.
백산상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서울의 이회영 집안과 함께 망국의 시기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대표적 가문으로 꼽는 경주 최부자집의 최준이다. 안희제의 제안으로 백산상회의 최대 주주가 된 그는 투자의 형식으로 거금의 독립운동 자금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지속적으로 기부했다. 동생들도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동생 최완은 임시정부에서 재정을 맡아 활동하다가 일제의 모략으로 국내에서 체포되어 결국 옥사했다(일본 경찰이 최준에게 서예를 배우고 싶다는 거짓말로 받아간 그의 글씨를 흉내내어 최준이 쓴 것처럼 편지를 조작해서 아버지가 와병 중이니 돌아오라는 가짜 편지를 보내어 국내로 잠입한 최완을 체포했다고 한다).
특히 최준이 해방 후 귀국한 백범 김구와 만난 일화는 유명하다. 최준은 안희제가 임시정부를 핑계삼아 자신이 준 돈을 백산상회 사업 자금으로도 일부 쓰고, 전달하러 가는 비용으로도 쓸 거라 짐작하며 절반이나마 임시정부에 전달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주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백범 김구는 최준을 만나 '그동안 보내준 자금을 독립운동에 소중히 사용했다'고 감사를 표하며 안희제로부터 받은 자금 기록을 보여줬는데, 최준의 기록과 대조해보니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최준은 그 자리에서 안희제의 고향인 경남 의령 방향으로 절을 하며 김구 선생과 함께 통곡했다고 한다. 이 일로 안희제라는 인간을 재평가하게 되고 그가 한 독립운동의 참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나는 역사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이 내용을 가르칠 때마다 울컥하곤 했는데 기념관에서 해설사 분의 설명을 들으며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부산 시민과 부산을 찾는 모든 분들이 부산의 인물로 백산 안희제를 꼭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부산 광복동, 남포동의 맛집과 BIFF광장과 가까운 곳에 전시관이 있으니, 꼭 찾아가보길 바란다.
시간 여유를 갖고 찾아가, 친절한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면 독립운동 관련 지식을 이 한 단계 더 상승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념관에서 나올 때는 백산 안희제 선생과 선조들의 희생에 감사와 감동을 느끼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백산기념관 찾아가는 길-부산 지하철 중앙역이나 남포역에서 1km 정도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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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과 문화에 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통해 한국 근대문화유산과 교육 관련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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