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과 함께 산다앞표지
정철
책을 찾다가 당당하게 똥 인형을 어깨에 올리고 프로필 사진을 찍은 저자를 발견했다. 이 책 <똥과 함께 산다>의 저자 유자와 노리코였다. 찾아보니 저서, 강의, 인터뷰 등이 죄다 똥 얘기로 도배된 인물이었다.
자신의 작업을 인문지리학이 아니라 인분지리학이라고 적을 만큼 똥과 순환의 역사를 파고드는 인물이었다. 이정도의 오타쿠가 파고든 결과물이라면 분명 재미있을 것인지라 내용을 살펴보았다.
화장실 문화, 화장지의 진화, 전쟁과 똥, 도시화와 똥, 문명화와 똥 등 똥과 얽힌 이야기라면 분야 불문하고 뛰어드는 저자는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에까지 나아간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똥에서 소외되는 우리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노동에서 소외될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는 똥에게서도 소외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매우 능동적으로.
전근대시대뿐 아니라 근대 초기까지 비료는 부족했고 인구는 근대 들어서 폭증했기 때문에 똥은 중요한 비료로 사용되었다. 비료로 쓰기 위해 농민들은 똥을 어떻게 가공해야 감염 가능성을 줄이고 비료로 쓸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은 똥과 비료화, 똥의 유통 등에 많은 신경을 쓰며 관리했다.
하지만 이후 인구가 폭증세를 보이자 농업 비료로의 활용 역시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똥에 대한 정책은 최대한 빨리 수거, 처분하는 것으로 변화되어 갔다. 이 과정에서 진공청소차가 등장하며 도시의 똥 수거 효율이 급격히 올라갔고 미국 문화의 유입에 따른 청결에 대한 인식 변화 이후 똥은 여러 폐기물 중 하나로서 매립이나 투기 대상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우리가 똥에 대해 관심을 끊고 방치한 것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은 상관없는 일 같지만 발상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더러운 것이 내 집, 내 나라에만 없으면 된다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겪으며 더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데도 소비적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우리는 그저 살던 대로 살고있다. 이쯤 되면 최대 정치 이슈는 바로 환경이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우리에게 환경 문제는 뒷전이다.
이 책을 만든 뒤 나는 변기 안의 똥을 한 번쯤 더 보고 물을 내리게 되었다. 저자의 지인이 똥의 상태를 보기도 전에 내려버리는 양변기가 싫다고 답했다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그 얘기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똥의 상태는 내 상태를 어느 정도 반영하므로 나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