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은 독자의 감정을 흔드는 말을 사용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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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홈쇼핑을 보면서 물건을 사는 일은 극히 적다. 다만 감탄한다. 말 진짜 잘해. 사람 홀리는 재주가 많아. 이러니까 사람들이 사지. 안 사고 배기겠나.
"방송이 끝나면 이 모든 혜택은 없습니다! 여러분! 곧 매진 됩니다. 브라운 컬러 고민인 고객님들, 서두르셔야겠어요, 마감 임박입니다, 지난번 방송에서 전부 매진, 전회 매진, 시간 많지 않습니다. 2분 남았나요? 서두르세요. 다음 방송 없습니다. 준비한 수량, 곧 끝납니다, 미룰수록 남는 건 후회뿐, 지금이 가장 쌉니다..."
빨라지는 말의 속도만큼 내 심장도 같이 뛰는 것 같다. 쇼핑호스트들의 말만으로는 매진에 닿기가 2% 부족한지 긴박한 효과음도 빵빵 등장한다. 마감 시간도 깜빡깜빡, 시곗바늘도 재깍재깍이다.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날리기라도 할 것처럼. 한 골이라도 더 넣기 위해 밀도 있게 압박 수비 들어가는 축구선수들마냥.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표현인데... 내가 제목으로 쓴 문장들과 비슷하잖아!
독자의 감정을 흔드는 말
쇼핑호스트들은 감정에 호소할 때가 많다. 제품에 따라서는 실험 결과를 근거 자료로 삼거나 언론 보도 내용을 보여주거나 하는 등 소비자의 이성적인 판단에 호소할 때도 있다. 하지만 시늉일 뿐, 대부분은 즉각적인 반응 즉 소비를 끌어낼 만한 멘트를 자주 사용한다. 앞서 언급한 말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편집기자인 내가 쇼핑호스트와 비슷한 표현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 했다고? 그게 뭘까? 바로 이런 거다.
- 인삼만큼 좋다는 가을 무...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 대구에서 찹쌀수제비 주문하신 분, 놀라지 마세요
- 강릉 가시는 분들, 4월 지나면 이거 못 먹습니다
- 군산의 분식, 유재석님 이거 꼭 먹어야 합니다
어떤가. 쇼핑호스트들의 목소리가 음성지원 되는 것 같지 않나? 다시 말하지만 이건 홈쇼핑 방송 멘트가 아니고 기사 제목이다. 가을 무의 효능을 '강조'하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거라고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그냥 찹쌀수제비가 아닌 '대구 찹쌀수제비'라는 '차별성'을 두면서 '왜 놀란다'는 건지 독자의 '호기심'을 노린 문장이다.
의도가 없는 문장은 제목에 없다. 어찌 보면 제목은 글쓴이 혹은 편집기자가 쓰는 고도의 노림수에 가깝다. 어떻게든 독자를 끌어당기고 보려는.
이번엔 여행 상품을 소개하는 홈쇼핑 방송 내용을 보자.
"지금 채널 돌리신 분들, 돈 버신 겁니다. 오늘 방송 아니면 이 가격에 절대 못 삽니다. 지금 결재하시는 거 아니에요. 지금은 전화 예약만. 전화 예약만 해도 추첨을 통해 상품 드려요. 그냥 지나칠 여행 상품이 절대 아닙니다. 이 가격으로 12월 여행 성수기 상품 절대 못 떠나요. 놀라지 마십시오. 4박 5일에 3만 9900원으로 OO을, 저가 항공 아니고요, 국적기로 가시는 겁니다..."
쇼핑호스트의 말에서 뭔가 '긴급함'이 느껴진다. 듣는 입장에서는 쫓기는 것 같은 마음도 든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바로 결재하는 게 아니라니까 안심도 되면서 생각할수록 가성비도 훌륭하다고 여겨진다. 부담 없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제목들은 어떤가.
- 지금 안 사면 1년 뒤... 슈톨렌 예약에 성공하다
- 지금 다운로드 받으세요,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 작년에만 5만 명... 지금 못 보면 1년을 후회합니다
- 장담합니다, 이 마음 5천 원으로 절대 못 삽니다
앞선 문장들이 주는 효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안 사면'이라고 하니까, 당장 사야 할 것 같은 '긴박감'이 느껴지고, '작년에만 5만 명'이라고 하니까, 나만 빠진 것 같아 불안한 마음도 든다. 동시에 나도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당장' 사야 하고, 나도 '5만 명'에 포함되고 싶은, 그게 뭔지 클릭해보고 싶은 마음이 차오른다. 그래서 글을 읽게 되었다면 정확히 내가 의도한 대로, 이끈 대로 넘어온 셈이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내용 있는 과장은 귀엽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