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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배우면 더 잘할 수 있어요" 한국어 교실 연 이주여성들

옥천 이주민인권연대, 국가·성별·직업 넘어 이주민 권리 외치다

등록 2023.09.10 17:29수정 2023.09.10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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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옥천 이주민인권연대의 생활한국어 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다.
충북 옥천 이주민인권연대의 생활한국어 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고 있다.월간 옥이네
 
최근 몇 년 사이 사회운동에서 빈번하게 등장해온 '당사자성'은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진단하고 말하는 일이 문제 해결의 기본임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당사자가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대안을 찾는 '주체성' 확보 차원에서 더욱 핵심적인 것. 그러나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이 그러하듯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는 많지 않다. 변방에 있을 수밖에 없는 약자의 목소리는 그들을 옆에서 돕는 이들을 통해 대신 발화되거나 대변해주는 이조차 없는 게 현실.

수많은 약자의 목소리는 그렇게 지워지거나 가려지곤 한다. 거의 모든 사회운동에서 당사자 역량 강화와 주도권 확보가 중요한 의제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인데, <월간 옥이네>가 만난 이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남다른 길을 만들어 가고 있는 당사자들이다. 올해 2월 발족한 '옥천이주민인권연대(회장 미야코)'가 그 주인공으로, 앞서 2020년 이주여성들이 직접 꾸린 '옥천결혼이주여성협의회(회장 부티탄화)'가 모태가 됐다.

다양한 지역사회 봉사활동은 물론 이주여성 정책 제안, 구술 기록 책자 발간 등 당사자의 목소리를 높여온 이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내딛는 한 걸음을 만나봤다.

함께 배우는 한국어, 권리 확보의 첫 걸음

"아르바이트 알죠? 이걸 줄여서 '알바'라고도 해요. TV에서 봤지, '알바천국'"

단어만 놓고 볼 땐 쉬이 들어오지 않던 의미가 적절한 생활 예시와 함께 설명되니 단번에 이해된다. '아, 그거!' 하고 깨달음을 얻은 참가자들이 이내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자 수업 분위기도 한결 말랑해진다. 오늘은 만 단위까지 숫자 읽기와 명사 뒤에 쓰이는 조사 '와/과' 복습이 진행됐는데 배운 것을 빠르게 끄집어내느라 수업 시작부터 다소 무거운 집중의 시간이 이어졌던 것이다.

지난 7월 22일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까지 진행된 생활 한국어 교실 풍경이다. 이주민인권연대가 마을공동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는 이 현장에는 10명 가까운 이주민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모여든다. 


2009년 옥천에 온 부티탄화씨가 이들을 위해 한국어 강사로 나섰다. 기본적인 문법과 격식에 맞는 한국어 사용은 물론 그가 지난 10여 년 간 삶 속에서 몸으로 체화한 용례까지 배울 수 있는 그야말로 '실용' 수업이다. 앞선 이주민 선배로서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 이어 옥천에 터를 잡고 '잘 살아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신입 이주민의 마음이 더해져 수업은 정해진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진행되기 일쑤다.

이날 처음 수업에 참여한 응엔티응옥야우씨는 이제 한국에 온 지 2개월 차. 그의 남편이 적극적으로 한국어 배우기를 권해 참여하게 됐다는데 "아직은 한국어 듣기나 말하기 모두 낯설고 어렵지만 열심히 해 언젠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고 싶다"고.
 
 충북 옥천 이주민인권연대가 진행하는 생활한국어 교실에 참여한 주민들
충북 옥천 이주민인권연대가 진행하는 생활한국어 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월간 옥이네
 
물론 이 수업에 이주 1~2년 차의 '신입 주민'만 있는 건 아니다.


"옥천에 온 지 14년 됐어요. 그만큼 말하기는 잘했지만 쓰기를 잘 못해서 문법과 맞춤법을 더 배우고 싶었거든요. 여기서 한국어 쓰기를 배우면서 이제는 중학생, 초등학생인 딸들에게 문자 메시지도 보낼 수 있게 됐어요. 딸도 요새 '엄마 이제 문자 잘 보낸다'며 칭찬해줘요(웃음). 딸들과 같이 받아쓰기도 해보고요."

베트남에서 온 쩐티뉴(한국이름 이예경, 옥천읍 장야리)씨가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어 교실의 효용을 설명한다. 무엇보다 같은 이주민인 선배에게 문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다고. 한국인 선생님에게 한국어를 배울 땐 도통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고 쉽게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모국어가 한국어가 아닌 이주민의 입장에서 가르치고 배우다 보니 서로가 느끼는 한국어 습득의 어려움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 10살과 생후 6개월의 딸을 두고 있는 웬티김풍(한국이름 김혜정, 옥천읍 문정리)씨는 수업이 자녀 한국어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듣기 수업도 같이 해서 전보다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쓰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앞으로 계속 배우면 훨씬 나아지겠죠? 잘 배워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잘 가르쳐주고 싶어요."

옥천읍 장야리 누구나 센터에서 진행되는 이 수업에는 동이면 혹은 이원면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은 동이면 금암리에 사는 쩐티녹흐엉(한국이름 전미나)씨도 함께다.

"한국 온 지 12년 됐는데 저는 아직 발음이 많이 어색해요. 듣는 것도 좀 어렵고요. 한국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잘 못 알아들어서 답답할 때가 많았는데 여기서 수월하게 배우고 있어요."

계절근로자 지원제도 등을 통해 옥천에서 일하고 있는 누옌넛남씨는 이날 근무 일정이 잡혀 아쉽게도 수업엔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부티탄화씨의 전언을 통해 그의 의지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 돈을 벌며 한국어를 배운 후 고국인 베트남에 돌아가면 한국어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생활에 필요한 실용 교육으로서의 한국어 교실뿐 아니라 누군가에겐 새로운 꿈을 키울 배움과 성장의 장이 되기도 한 셈이다.

이주민인권연대가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겠다고 했을 때 강사로 발벗고 나선 부티탄화씨는 서로가 공감하며 배움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어 선생님이 알려주는 한국어는, 아무래도 이제 막 한국어를 접해 낯선 이주민들에겐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하지만 같은 이주민이 한국어를 가르쳐 줄 땐 이미 앞서 겪은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조금 더 공감하며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되기도 하죠. 무엇보다 말을 잘 할 줄 알아야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 교실은 앞으로도 더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주민도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입니다
 
 충북 옥천 이주민인권연대 누엔티튀(한지영), 후인티튀끼우(유정이), 미야코, 크리스탈(김수정)씨
충북 옥천 이주민인권연대 누엔티튀(한지영), 후인티튀끼우(유정이), 미야코, 크리스탈(김수정)씨월간 옥이네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옥천이주민인권연대는 현재 6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회장 미야코 씨를 비롯해 크리스탈(김수정), 후인티튀끼우(유정이), 누엔티튀(한지영), 팜티프엉(박지현), 누엔티타오(안유정)씨가 그 주인공. 모두 결혼이주로 옥천에 정착하게 된 이들인데, 2020년 결혼이주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옥천결혼이주여성협의회 활동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이미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이주여성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옥천결혼이주여성협의회 외에 또 다른 단체인 이주민인권연대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결혼이주여성협의회가 처음에는 결혼이주여성 권리를 이야기하다가 지금은 이주여성뿐 아니라 이주민 전체에 대한 권리 확보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오고 있는데요. 바로 이런 활동을 좀 더 잘 하기 위해 이주민인권연대를 새롭게 만들게 됐어요. 옥천에도 일을 하러 온 외국인들이 많은데 이들 전체의 권리를 다 포함하는 이야기를 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죠."

미야코 회장은 이주민 권리 운동이 기존 결혼이주여성협의회의 활동을 넘어설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국어 교실을 이주 노동자까지 아우르는 활동으로 기획해 시작한 이유다. 다른 농촌 지역이 그러하듯 옥천 역시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일손 없이 농업 현장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 이주민과 선주민이 서로를 도우며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언어를 배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말을 배우는 건 가장 중요한 활동이에요. 모든 사람에게 필수죠. 한국어 교실을 계속 운영하면서 활동을 꾸준히 알리고 더 많은 이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일단 저희 목표예요. 그 다음에는, 결혼이주여성협의회에서 앞서 요구했듯 이주민인권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봐요.

개인적으로는 이주민이 있는 각 가정에 정착과 생활 전반을 도울 수 있는 멘토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같은 나라 여성이 사례관리사가 돼 어려움은 없는지, 사각지대에 처해있진 않은지 점검해보는 거예요. 그러면 이주여성 일자리도 창출되고 실질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겠죠."

누엔티튀(한지영)씨는, 어쩌면 결혼이주여성보다 훨씬 더 가려져있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도움을 이주민인권연대 활동을 통해 펼쳐나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한국에 와서 살고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많아요. 그중에는 미등록체류자도 있을 수 있고요. 하지만 이들이 어려움에 처해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아요. 성별이나 나이, 출신국가에 상관없이 모두 함께 참여하고 우리가 좀 더 넓게 연대할 수 있는 방향을 만들고 싶어요."

크리스탈(김수정)씨는 "각국의 문화와 생활방식 등을 선주민 혹은 서로 다른 출신국의 이주민들이 함께 나누고 화합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겠냐"고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충북 옥천 이주민인권연대가 진행하는 생활한국어 교실에 참여한 주민들
충북 옥천 이주민인권연대가 진행하는 생활한국어 교실에 참여한 주민들월간 옥이네
 
 PPT 제작 수업을 받고 있는 이주민인권연대 회원들
PPT 제작 수업을 받고 있는 이주민인권연대 회원들월간 옥이네
 
밖으로는 한국어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요즘 내부 회원 역량 강화 활동의 일환으로 PPT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각자의 모국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일도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이런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것도 필요해서 배우고 있어요. 이주여성이라고 해서 '엄마'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자리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에게도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계속 만들고 싶어요. 이를 통해 이주민 권리를 더 많이 이야기하고 나누어 가겠습니다." (미야코)

월간 옥이네 통권 74호 (2023년 8월호)
글·사진 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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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인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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