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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비행기까지... '노키즈존'이 가져올 위험한 미래

유아 동반 비행기 탑승 논란에 부쳐... 불편하면 배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등록 2023.09.23 13:36수정 2023.09.23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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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해외여행을 떠났다. 코로나 이후 처음, 난생 처음 아이와 함께 하는 해외여행이었다. 걱정 중 하나는 아이가 비행기에서 (얌전히) 버텨줄 수 있을까, 였다.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는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라 걱정을 덜었다. 아이는 아마 비행 내내 잠을 잘 것이다. 다만 돌아오는 비행편은 오후 시간대라 걱정이 되었다. 낮잠을 잘 시간이긴 한데, 요즘 낮잠 따위는 가볍게 패스하는 일도 다반사라 안심할 수 없었다.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어른의 말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에 아이가 막무가내로 난동을 부리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안심은 금물. 어른에게도 힘든 비행, 아이가 지루해하거나 급히 용변을 봐야 할 경우에 대비하여 방안을 미리 강구해야 했다.

유아 동반 여행

5시간의 비행. 준비한 것은 장난감 자동차와 레고, 막대사탕, 젤리였다. 자동차와 레고로 놀리다가 사탕이나 젤리를 주어 지루함을 덜어주자는 게 계획이었다. 그때 생각했어야 하는데... 5시간은 그래도 긴 시간이라는 것을. 핸드폰에 영상을 다운받고 이어폰을 준비하는 치밀함 따위는 내게 없었다. '요즘 부쩍 아이와 대화가 잘 통하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예상대로 출발은 순조로웠다. 평소라면 꿈나라로 떠날 시간, 아이가 공항에서 흥분을 소진하고 좌석에 앉아 비행기가 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륙의 흥분이 가신 아이는 몸을 비비꼬기 시작했다. 이미 자동차와 레고놀이에 흥미를 잃어버린 후였다. 막대사탕은 소진되었고 무슨 연유에서인지 젤리는 도착하면 먹겠다고 했다. 도착하려면 3시간은 더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행동과 환경의 제약이 있는 상공에서 3시간이란 지상에서의 6시간과 맞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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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륙의 흥분이 가신 아이는 몸을 비비 꼬기 시작했다. ⓒ elements.envato

 
마침 가방에 펜과 종이가 있었다. 아빠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하자! 아이는 그게 유일한 선택지라는 걸 아는 듯했다. 거북이 얼굴을 한 벌과 각종 자동차를 그려달라는 주문을 했다. 미술을 전공한 아빠를 써먹을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순간이었다. 아이를 아빠에게 잠시 맡기고 숨을 돌리자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 복도에 아빠로 보이는 한 남성이 아기를 안고 서 있었다. 보채는 아이를 달래느라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 한 인터넷 게시판에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는 부모들을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고, 그 글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난의 요지는 자신의 행동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비행기를 같이 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화살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 탑승을 감행하는 부모에게 향했다.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여행을 기억도 하지 못할 아기와 주변인을 고생시키는 것은 이기적이라 했다.

여기서 아이를 돌보는 양육자가 양육자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을 터부시하는, 마치 누리면 안 되는 사치처럼 취급하는 인식의 단면을 봤다. 이게 바로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떠난 여름휴가를 마음대로 '태교여행'이라 부르는 일에 모종의 거부감을 느꼈던 이유다.

4년 동안의 육아로 깨달은 점 하나는, 육아가 타인과 관계된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타협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때로는 아이의 욕망이 더 우선시 되고, 때로는 나의 욕망이 앞서기도 한다.

아이의 욕망과 양육자인 나의 욕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에 엄마인 나도, 나의 돌봄을 받는 아이도 편안해지고 지속가능한 육아의 환경이 만들어진다. 최소 20년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과정에서 양육자가 자신의 즐거움을 적절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이의 기억만큼이나 양육자인 나의 기억도 중요하다. 

그 연장선에서 아이가 조용히 쉬고 싶은 탑승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비난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우리 집 어린이가 태어나기 한참 전, 어느 고속버스 안에서 본 풍경이 떠오른다. 잠시 남쪽으로 근거지를 옮긴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이었다. 3시간이 넘는 긴 이동이었다. 버스가 수도권에 진입하자 어마어마한 교통체증에 갇혀버렸고 버스 맨 앞자리에 탄 부부와 동행한 아기가 울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갓난아기였다.

끝이 날 법도 한데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교통상황에 더해져 피로를 배가 시켰다. 그러나 누구 하나 소리를 높이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이 아무리 노력해도 저렇게 자그마한 아기가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면, 그건 불가항력이라는 것을.

그렇다고 그 버스 안의 모든 사람이 출산과 육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건 상식인 것이고, 그날 그 시각 그 버스를 공유하는 사람들로서 그 상황을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진 걸까. 각박해진 경제상황? 합계출산율이 1명에도 못 미치게 된 저출생 현상의 심화? 이러한 거시적인 변수에 더해 나는 '노키즈존의 출현'을 추가하고 싶다.

2014년 즈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던 노키즈존의 폐해가 최근의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쾌적함을 위해 누군가를 거부하고 차단할 수 있다는 생각. 노키즈존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한 하나의 본보기였다. 노키즈존은 논란을 발생시켰고, 결국 일부 지역에서 그것을 금지하는 조례를 발의하는 사태를 낳았지만 한번 실현되었던 아이디어란 확장되는 법이다.

인간은 누구나 아기와 어린이였던 유아 시절을 지나 운이 나쁘지 않다면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된다. 이러한 생애주기는 직선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원의 모양으로 맞닿아 노년기에 속하는 사람들은 유아기일 때와 같이 타인의 돌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이는 사람들이 가진 그 어떠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리다.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란 자신의 행동을 뜻대로 제어하지 못하게 됨을 의미하고 그건 필연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아기도 노인도 장애인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불편함이란 이러한 소위 사회적 약자들만이 타인에게 끼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단순히 민폐를 끼치는 차원이라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아이보다는 성인으로부터 불쾌감을 느낀 적이 훨씬 많다.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을 그룹화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건 특정한 집단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하는 일이기에.

아이라고 다 같은 성향과 기질, 발달 단계를 가진 것이 아니고, 양육자라고 다 같은 양육자가 아니다. 모든 아이가 다 막무가내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공공장소에서의 예절을 배우고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타인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자랐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더. 누구나, 상황에 따라 타인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기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이와 우리 가족을 태운 비행기는 무사히 인천에 상륙했다. 가족동반객이 많았던 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이해하고 양해하며 비행을 마쳤다.

4년 만에 아이와 함께 첫 해외여행을 마치며 유독 아이와 양육자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쾌적함' 또는 '편리함'을 위해 이들을 나머지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아이디어의 위험성과 모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실릴 예정입니다.
#유아동반비행 #유아동반여행 #노키즈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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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닌 지 10년, 아이를 키운 지는 3년이 되었고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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