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화문의 전면. 2023년 9월 현재 월대 복원 공사가 한창이다.
이영천
일제가 이 길에 전차선을 깔았고 광화문을 궁 동쪽 담장으로 밀쳐내 버린 상실감, 경복궁을 굽어보듯 백악산을 막아선 총독부 청사의 서늘함, 수탈과 탄압을 일삼던 무자비한 총칼, 이런 앗김에 피로 맞서던 저항이 점철되어 있다. 열어젖히진 못했지만 그나마 백성의 힘이 빛을 갈구한 최초의 몸부림이었다.
환희에 찬 해방 물결과 극심한 좌우 대립, 반쪽짜리 나라의 정부 수립 축하 행렬이 보이는 것 또한 당연지사다. 총독부 건물에 번갈아 깃발을 바꿔 걸던 비극의 한국전쟁, 질주하며 경무대 향하던 4·19 혁명의 물결, 뒤이은 쿠데타와 십수 년 이어진 지독한 독재 권력의 횡포가 장편 서사시처럼 흐른다. 독재자 사생아들이 광화문 옆에 세웠던 탱크에선 차라리 의분이 솟는다.
1987년 6월 항쟁이 그나마 형식적 민주주의를 열어젖힌다. 그 체제에서 맞이한 광복 50주 년, 총독부 청사 돔이 해체되는 장면을 보면서 비로소 해방을 실감한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오히려 희화화하였다. 그런 까닭이었을까, IMF 환란이란 고통이 칼날처럼 떨어진다.
월드컵 축구로 한 가닥 열림을 체험한다. 새로운 세계였고, 넓혀진 인식 지평이다. 그 힘으로 2016년 겨울, 차가운 겨울을 촛불로 녹여낸다. 우매한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 내린다. 희화화한 민주주의가 광장으로 다시 뛰쳐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