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양민희생자 유족 김상록씨
주간함양
- 마을에서 끌려가신 분이 몇 분이나 되신가요?
"열한 명. 등구가 열 명인데 연고 없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 뒤에 후손이 없는 사람이 하나 있어. 추성에서 열한 명 등구에서 열명, 마천서 스물한 명. 한날한시에 끌려갔어."
- 그 날짜가 언제인가요?
"1950년, 우리는 그때 음력을 샜으니까 동짓달 초아흐레 날."
- 그럼 그전에는 북한군이 내려와서 먹을 것을 요구하기만 했나요?
"총을 갖다 들이대는데 식량을 안 줄 수가 있나. 빨갱이는 먹을 것만 탈취해 갔지 사람은 하나도 안 죽였어."
- 어르신 형제분은 어떻게 되시나요?
"나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어. 우리 집에 딸은 안 돼. 우리 누나 17살 묵어 죽고 여동생도 경기 나서 죽고, 그래서 우리 집에 딸은 안 돼."
-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떻게 사셨어요?
"어머님은 재가하고 작은아버지 밑에서 우리 두 형제가 컸지. 내가 지금 열여섯 살 먹는 사람보고 소 쟁기질하라 하면 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근데 나는 그 나이에 다 했어. 소 부리고 농사 다 짓고 그랬어. 작은아버지 밑에 있다가 결혼하면서 분가해서 나왔어. 아들 삼남 이녀 두고."
- 아버님 시신은 찾으셨나요?
"시신은 못 찾고 그때 부산 형무소에서 사람 패 죽여 놓고 각 처에 편지를 보낸 거라. 이 사람 아파서 죽었으니 시체를 찾아가라. 작은아버지가 가니까 한 구덩이에 누구 누구 이름을 써서 여기 있으니 찾아가라 하는데 뒤섞여 놓으니 찾을 수가 있어야지. 우리 아버지는 손등에 새까만 점이 있었는데 그 점을 보고 찾았어.
지금 같으면 얼마든지 화장해서 가져왔을 건데 그 당시만 해도 차가 있나 뭐가 있나. 부산 한번 가려 하면 새벽밥 출발해 저녁에 가서 내리고 그랬을 때라. 그때가 그런 시절이라.
찾아서 가져오지도 못하는 거고 그냥 옆에다 묘를 쓰고 길쭉한 돌을 앞에다가 하나 표시로 세워서 꽂아놨지. '나 한번 데리고 가서 보여준다' 하더만은 형편이 곤란하고 하니까 데려가지도 못하고 해서 다 실묘 돼버린 거라. 그때 다 그랬어."
사랑방서 새끼 꼬다 잡혀가
- 일상생활 하던 중 갑자기 끌려가게 되신 건가요?
"시골에는 옛날에 사랑방이 있어요. 사랑방에서 농사짓는데 보리 심어놓고 오줌 싸라고 큰 나무에 구덩이 파놓고 소변을 거기다 받아서 장군으로 지어다가 보리밭에 소변을 줘서 농사를 지어 먹고 그랬어, 그 시절에는.
그래서 소변 많이 보라고 무우를 동치미 담아서 먹으라고 해서 주면 먹고. 사랑방에 모여 앉아서 새끼를 꼬고 망태도 만들고 짚으로 공예를 많이 했어. 뺑 둘러앉아서 새끼를 꼬고 있는데 갑작스레 문을 확 열고 덮친 거라.
너희 전부 반동분자 아니냐고. 그 생사람을 잡은 거라 생사람을. 새끼 꼬고 있던 열한 명 몽땅 다 잡아가고 살아온 사람은 그 한 사람밖에 없어. 나이가 젤로 어린 사람. 뭔 죄가 있겠냐 하면서 살려 보내줬어."
- 사건 후 동네 분들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청년들 잡아가면서 집마다 불을 다 질러버렸어요. 태워버려서 이사를 간 거지. 올라오다 보면 보이는 부락마다 여기가 산 밑이 돼서 적군이 많이 올라온다고 해서 다 이주를 시켜버렸어. 금계, 도마, 안봉, 마천, 전부 뿔뿔이 흩어졌어. 집을 다 태워서 없는데 어떻게 살겠어. 죽일 놈들이 못된 짓만 가려가면서 했어."
- 이주 후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우리는 금계 부락으로 가서 이삼 년 있었어. 할머니, 할아버지는 작은아버지가 모시고 마천으로 갔는데 어머니 재가하고 살림해야 될 거 아이가? 내가 열세 살 먹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밥상 차려서 모셨어.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아버지 명예 회복하고 잘 되는 거 보고 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어. 내가 죽으면 안 되겠구나."
- 병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며칠 만에 왔나요?
"그건 몰라요. 부산시장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어. 거짓말을 해도 참. 국가가 백성을 죽이는 건 원수지간이나 하는 짓 아니요? 나라가 백성을 존중하고 해야 잘 되는 거지. 지금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사람 죽여봐, 그걸 그냥 놔두겠어?"
- 동네에 이 사건을 기억하거나 같이 얘기를 나누는 분들이 있나요?
"없어. 다 죽었어. 살아있어도 나만큼 똑똑히 들은 사람은 없어. 위에서 전해 들은 얘기를 아는 거지. 나한테 그 살아오신 분이 '동생, 이다음에 내가 한 말이 쓰일는지 모르니까 잘 들어놓게' 하면서 그 얘기를 하더라고.
일본 말로 '네가 뭔 죄가 있나 이 세상에는 억울한 일도 많단다, 그 말을 꼭 귀담아 두게' 나한테 그러더라고. 그러니 자기들도 억울하게 사람들이 죽은 걸 알아. 맞아죽은 걸 알아. 저거도 사람인데 그걸 모를 턱이 있나.
내가 이거 조사하려고 김영삼 대통령 때 탄원서를 올렸어. 물론 대통령이 이런 거를 다 읽어볼 수는 없겠지. 이게 민원실에서 다 빠꾸를 시킨 거라. 답변이 오기를 국방부로 가서 물어봐라 해서 국방부로 다시 탄원서를 올렸어.
국방부에서는 뭐라고 답변이 왔냐면 부산 정부 합동 문서창고가 있으니 거기 가서 알아봐라 이러는 거라. 그래서 부산에 갔어. 사람을 하나 사서. 그 당시 서류는 다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나는 학교도 못 가고 했는데 그걸 어찌 알겠어. 그래서 한문 잘하는 사람을 돈 주고 20만 원 주고 사서 데리고 갔어.
가니까 박정희 대통령 때 서류 다 불태웠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안 보여줘. 우리 같은 사람이 가면 안 보여줘. 이걸 명예 회복을 위해 조사를 했잖아. 그 감독관들이 가서 보자고 하니까 보여주더라고. 그때 문서를 보고 이 사람들 명예 회복시켜야 한다고 해서 명예 회복이 된 거라."
별명은 하루걸이, 사촌 동생 팔 남매 업어 키워
- 그 일 이후에 작은아버지 댁에 사실 때 이야기를 조금 해주시겠어요?
"농사지었어요. 학교에 가기는 갔는데 내 명칭이 있어요. 학교 하루 가고 집안일 하루하고 하느라 내 별명이 '하루걸이'였어. 선생님이 하루걸이라 이름을 지었어. 공부만 해도 모자랄 판에 그랬으니 내가 뭘 배웠겠어.
맨날 공부해도 잘하니 못하니 하는데. 기초를 잘 배웠어야 할 때 학교에 못 갔으니까 몰라 아무것도. 그래도 하루걸이한테 졸업장을 주긴 주대. 중학교 갈 형편은 못되고.
내 사촌 동생들이 팔 남매라서 전부 내가 내 등허리로 업어서 다 키우고 농사도 짓고. 시골농사 아홉마지기라 하면 일거리가 너무 많아요. 열여섯 살 먹는 내가 그 일을 다 했어요. 머슴 하나 데리고 농사를 짓고 했는데. 작은아버지가 스님이라 전부 내가 알아서 다 하고.
할아버지가 손부나 보고 죽는다고 결혼하라고 환장을 하네. 스물일곱쯤에 결혼하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결혼하라고 졸라서 스무 살에 결혼을 했어. 결혼해서 애 하나 낳고 1964년 11월 24일 입대를 했어.
4년간 군대 생활하고 와서 분가하는데 나 혼자 대구에 갔어. 돈 번다고. 목수를 배워서 평생 목수로 살다가 이제 하지도 못 하고 매듭 지을 나이가 됐어. 밥맛도 모르고 설치고 다녔어. 어찌 됐든 먹고 살아야 되니까. 애들도 있고."
- 자녀분들께 이런 이야기를 해 주셨나요?
"해줘도 몰라요. 해줄 필요도 없고. 큰아들이 지금 육십이에요. 내가 장가를 일찍 갔더니만. 할아버지가 손부 봐야 된다고 일찍 결혼했더만 증손 봐야된다고 해서 보고, 원 없이 다 했구만.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뭘 어찌해서 먹고살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물려줄 것도 없어. 나는 태어나서 아버지 잃고 나서 계속 그때부터 내가 벌어 내가 먹고 살았어. 내 사주팔자가 외로울 고자가 들었어. 외롭다 그 말이야."
* 이 기사는 증언자의 구술을 그대로 살리고자 방언을 사용하였습니다. 구술 내용 중 날짜, 나이, 숫자 등에는 구술자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으며 전체 내용 또한 증언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기록됐습니다.
유족
■ 이름 : 김상록
■ 희생자와의 관계 : 희생자의 아들
■ 생년월일 : 1943년 4월15일 / 만 80세
■ 성별 : 남
■ 주소 : 함양군 마천면 칠선로 240
■ 직업 / 경력 : 농업
희생자
■ 이름 : 김명수
■ 생년월일 : 모름
■ 사망일시 : 1950년 음력 2월7일 / 당시 45세가량
■ 성별 : 남
■ 결혼 여부 : 기혼
■ 주소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317번지
■ 직업 / 경력 : 농업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바른언론 젊은신문 함양의 대표지역신문 주간함양
공유하기
"사랑방서 새끼 꼬다 잡혀가, 아버지 얘기하면 눈물 나서..."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