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 샤르뎅의 그림으로 남아있는 1670년 에치미아진 성당
이상기
1500년대 들어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지배를 받으며 종교의 자유가 상당 부분 회복되었으나, 1604년 사파비 왕의 명령으로 주교좌가 이스파한 근교 뉴 줄파(New Julfa)로 이전되기도 했다. 이때 에치미아진 성당의 유물 일부가 뉴 줄파 성당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1627년부터 모세스(Moses) 대주교에 의해 성당의 돔과 지붕, 신부관 등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길과 성벽 모양의 높은 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1650년대부터 서쪽 종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모습은 1670년대 이곳을 방문한 프랑스 여행자 샤르뎅(Jean Chardin)의 그림으로 남아 있다. 1682년에는 규모가 작은 세 개의 종탑이 동쪽, 남쪽, 북쪽에 더 세워졌다.
1930년대 들어 소련당국의 종교탄압이 시작되었고, 1938년 4월 국가보위부에 의해 대주교인 코렌 1세(Khoren I)가 살해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8월에는 아르메니아 공산당이 에치미아진 대성당을 폐쇄하기로 결정한다. 성당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로, 20명 정도의 인원으로 현상유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7년 후인 1945년 9월 성당은 다시 문을 열었고, 게보르크 6세(Gevorg VI)가 새롭게 대주교로 선출되었다. 1950년대 들어 성당에 대한 발굴과 보수가 이루어졌고, 해외 아르메니아계 기업가의 후원도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공인과 축성 1700주년이 되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대대적인 수리와 축하행사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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