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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의 원인? 돈보다 '이게' 더 문제입니다

어느 워킹맘의 경험담... 저출생 문제 해결의 핵심은 '노동시간 단축'

등록 2023.10.07 11:00수정 2023.10.1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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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을 기록하고 있고, 이는 가임기의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이라 예측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1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 elements.envato

 
"애 낳아야지~ 애 안 낳으면서 똑같이 혜택(연금) 받으려고 하면 안 되지~"


결혼은 하고 싶지만 아이는 잘 모르겠다는 10년 전 나의 말에 한 직장 선배의 반응이었다.

'여자들이 왜 아이 안 낳는지가 중요한 거 아니야? 아니 애초에 저출산이 뭐가 문제라는 거야. 정부 입장에서나 그렇겠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여성을 아이 낳을 수 있는 몸이라고만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라고 속으로만 되받아치던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10년 전부터 '저출산'은 문제였고, 지금에 와서는 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합계출산율 수치가 문제의 심화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을 기록하고 있고, 이는 가임기의 여성이 평생 동안 낳을 것이라 예측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1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저출생 고령화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 모든 측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텐데 단적인 예로, 우리는 은퇴 후 현재 기대하는 만큼의 노후연금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다.

정말, 돈이 문제입니까?


상황이 이쯤되니 영유아를 양육하는 부모에 대한 지원금을 늘리고, 나아가 황혼육아를 하게 된 조부모까지 지원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마치 파격제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 1명당 한번에 5000만 원을 일괄지급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대책을 내놓기 전에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기혼자들, 주변의 영유아를 키우는 양육자에게 의견 좀 물었으면 좋겠다. 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냐고,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정말 돈이 문제일까? 물론 돈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그렇지만 한 인간을 양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고작 한번에 5000만 원을 준다고 해결될 규모의 돈이 아니다. 유럽 선진국처럼 세금을 많이 걷는 대신 무상(또는 무상에 가까운) 교육, 무상의료를 실현한다면 몰라도 그런 일회적인 지원금으로 우리나라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지난 2018년에 보도한 기사만 봐도 그렇다('공무원 출산, 일반인의 2배'). 공무원이 일반인에 비해 2배 이상의 출산율을 보인다는 내용이다. 간략한 분석도 곁들였다. 출산율을 결정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5년차 5급 공무원이나 10년차 7급 공무원 월급으로 비교할 때 공무원 월급이 전국 30대 직장인 평균소득보다 높지 않기 때문이다. 기사는 육아휴직과 직장어린이집의 예시를 들며 보육환경과 고용보장이 공무원 출산율의 비결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돈이 아니라 노동환경에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기사의 방향성에 동조하면서도, 그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노동 시간!

한끼 가족 식사도 어려운 현실 

2년 동안 알차게 사용했던 육아기 단축근무의 종료를 앞두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앞으로 어린이집에서 저녁을 먹이겠냐고 물었다. 퇴근 후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저녁 7시,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준비해 식사를 하려면 일러도 7시 30분은 되어야 할 참이었다. 그렇게 하겠노라고 어린이집에 답을 한 뒤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저녁 식사까지 하면 아이는 주말을 빼고는 하루에 한번도 우리와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퇴근 후 급하게 아이의 식사를 준비하는 수고를 덜 수 있고, 아이도 배고플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슬퍼졌다. 하루에 한 끼도 아이와 같이 할 수 없다니. 우리에게도, 아이에게도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더군다나 마침 남편이 퇴근하는 시각이 당겨져 아이에게 가족의 저녁 식사시간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있던 찰나였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영상을 보여달라던 아이가 가족이 다함께 자리에 앉으니 영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이는 같이 이야기하며 밥을 먹는 식사예절을 익히고 있는 중이었다.

고민 끝에 저녁은 집에서 먹이겠다고 다시 말했다. 아마 많은 양육자들이, 특히 여성들이 이러한 지점들에서 '무엇을 위해 일하나'라는 회의를 느끼고 '전업'과 '워킹' 사이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리라.

9시부터 6시까지 직장에 있어야 하는 엄마와 불규칙한 패턴으로 일하는 아빠를 둔 3살 아이의 일과는 다음과 같다. 무려 11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셈이다. 아무리 어린이집을 좋아하는 아이라 해도 팍팍한 일정이다.

오전 7시 50분 : 집을 나감
오전 8시 10분 : 어린이집 도착
오후 7시 : 하원
오후 8시 : 저녁 식사 완료
오후 8시~10시 : 놀이
오후 11시 : 수면


단축근무가 끝난 지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아이가 늦게까지 잠에 들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잠잘 시간이라고 하면 "더 놀고!"를 외친다. 그래도 자야 한다고 하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기도 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이의 늦어진 수면은 (당연히도) 아이에게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아이를 재우고 유튜브를 봐야지, 책을 마저 읽어야지, 글을 써야지 했던 바람이 무색해지게 그대로 침대에 누워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기 일쑤다. 하루 종일 기다리는 나만의 시간이 없어진 셈이다. 그건 마치 내가 없는 나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 그나마 '칼퇴'가 가능한 직장에 다니는 나의 상황도 이러한데 9시~6시의 노동시간마저 지켜지지 않는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양육자들의 어려움이야 안 봐도 훤하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이기도 하면서 중남미 국가를 제외하면 노동시간이 가장 긴 국가이기도 하다. 이 둘 사이의 연관성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 퇴근하면 재충전하기에 바쁜 환경에서 출산과 육아는 당연히 선택의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런 상황에서 '삶의 질'과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과처럼 보인다. 금전적인 지원으로 저출생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라는 말이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고 삶의 질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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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육아 #워킹맘 #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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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다닌 지 10년, 아이를 키운 지는 3년이 되었고요,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더불어 살기 좋은 세상에 대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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