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살로니키의 케말 파샤 생가
Widerstand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언어를 사용하는 두 집단이 섞여서 거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근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모순을 초래하게 되었죠.
19세기 이후 그리스에도 내셔널리즘이 성장합니다. 그리스인이 그리스인만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었죠.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 각국에 퍼졌던 국민국가의 이념이 그리스까지 넘어온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인은 오스만 제국을 향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1821년에 시작된 전쟁은 1829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이미 몰락하고 있던 제국이었습니다. 반면 그리스는 러시아나 영국 등 열강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죠. 전쟁은 분전 끝에 그리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렇게 그리스 왕국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에게 남은 길은 아직 험하기만 했죠. 그리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어쨌든 열강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신생 국가인 그리스에게는 열강에 진 막대한 빚이 남았습니다.
왕국이 세워졌지만, 정작 그리스인은 국왕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독립 직후 몇 년 간은 열강의 신탁 통치를 받았죠. 이후에는 열강의 합의에 따라 바이에른의 왕자가 그리스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그리스인은 대부분 정교회 신자였지만, 바이에른 출신의 국왕 오톤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독일 출신이니 당연히 그리스어도 하지 못했습니다. 열강의 지원으로 선임된 국왕이니, 여러 이권을 열강에 넘겨줘야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리스는 이후 국왕의 폐위와 새 국왕의 선임, 이를 둘러싼 분열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뒤로 오스만 제국과도 한 번 더 전쟁을 치렀다가 패배했죠. 역시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한 발칸 반도 국가들과는 1,2차 발칸 전쟁을 치르기도 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