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도시, 베를린
스리체어스
저자는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계수 교수다. 법을 중심으로 독일 베를린의 주거권 투쟁 운동, 그리고 법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본다.
대한민국에서 민간 부동산 회사가 보유한 주택을 사회화하는 국민 투표에 부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유재산을 국가에서 빼앗는 투표라며 비난받을 게 뻔하다. "여기가 무슨 북한도 아니고.."라고 읊조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언론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는데, 다수 언론은 베를린의 주택 사회화에 관한 국민 투표를 '몰수 운동'이라고 표현한다.
주택의 사회화, 독일 국민 투표에선 어떻게 가결됐을까
반면 2021년 베를린에서는 민간 부동산 회사가 보유한 주택을 사회화하는 방안을 국민 투표로 가결시킨 바 있다. 57.6%가 동의했다. 어떤 역사적, 문화적 배경 때문에 베를린에서는 가결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이유는 이렇다. 첫째, 임차인의 지위가 강화되는 데에는 독일 법이 큰 역할을 했다. 독일에서는 임대인이 주택 임대차 관계에 기간을 정하거나 관계를 해지하는 것을 제한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임차인의 지위를 인정하고 보호하는 데 긍정적이진 않았다. 진보와 후퇴를 반복했다. 이는 정치적 투쟁을 지속해 왔다는 의미다.
독일은 1차 대전 이후 심각한 주택난에 직면하자 1923년에 임차인 보호법을 제정한다. 그러나 1960년대 '주택 통제 경제의 폐지와 사회적 임차법주택법에 관한 법률(뤼케법)'이 제정되면서 임차인 보호법은 후퇴했다. 결국 1966년에 이르러서 임차인 보호법은 폐지된다.
다행히도 1969년 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 연립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임차인 지위가 강화되는 불씨가 지펴진다. 1971년 '제1차 주택 사용 임대차 해지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임차인의 지위를 강화한다. 결국 입법 영역에서 진보와 후퇴를 반복하며 오늘날 임차인을 보호하는 법률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자리 잡은 법은 독일 내 주거 문화를 바꾸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러한 정치적 투쟁을 지속해 올 수 있었던 건 임차인의 절대적 숫자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독밥'(독일 취업·스타트업·프리랜서 플랫폼)에 따르면, 2018년 베를린의 자가 주택 보유자 비율은 약 17.4%란다. 임차인 비율이 82.6%다. 임차인들의 전부(82.6%)가 주택 사회화를 찬성(57.6%)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강화된 임차인의 지위가 주택 사회화 방안 투표 가결에 영향을 준 건 분명하다.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많은 임차인의 수 때문만은 아니다.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성공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베를린 세입자들은 단결하여 투쟁했고, 집마다 직접 방문하면서 힘을 썼다. 즉, 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투쟁과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한국에선 주거권 투쟁이 없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