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굴암돈대 위를 산책하고 있는 박호성 서강대 명예교수
김병기
[인간론] 풍전등화가 아니라 '바람을 비추는 등불'인 까닭
요즘은 1분 미만의 짧은 영상이 유행하고, 책보다는 짧은 인터넷 콘텐츠를 즐겨보는 시대다. 이런 콘텐츠들은 인스턴트식품처럼 가볍게 소비할 수 있기에 전파력이 뛰어나고, 대부분 쉽게 잊히기에 휘발성도 강하다. 하지만 최근 박 교수가 세상에 내놓은 '인간론'은 무려 720여 쪽에 달한다. 어려운 사상서를 쉽게 풀어쓰기 위해서였단다. 그래서 쉽게 읽힌다.
-책 두께만 보고 부담스러워할 독자들을 위해 한 문장으로 요약을 해주신다면?
"인간을 '바람 앞에 등불'로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이 책은 왜 인간이 '바람을 비추는 등불'인지를 말하는 책입니다."
-1장 '인간 본성과 인연론'에서 인간 본성을 고독과 욕망으로 규정하고 인연론을 설명했는데, 요지는 무엇인지요?
"인간은 고독하고 유한한 존재죠.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왔기에 결여된 상태였고, 생존해야 하니까 자연스레 욕망이 수반될 수밖에 없죠. 이런 본성을 채우려면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맺음이 필요합니다. 이게 바로 인연의 시작입니다. 불교 철학에서 말하는 '인', 즉 씨앗을 심으면 싹이 나는데, 혼자 힘으로는 안 되죠. 물과 토양, 햇빛 등과 만나야 '연', 즉 열매를 맺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 장에서 '행동적 니힐리즘'과 '불구하고의 철학'이 등장합니다.
"인간의 삶은 허무합니다. 고독한 삶이기에 그렇고, 욕망을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죠. 이에 맞서서 풍성한 삶을 만들려고 감행하는 무모한 도전, 이때 '행동적 니힐리즘'이 요구됩니다. 또 우리는 '무엇무엇 때문에 무엇을 못 했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행동적 니힐리즘의 밑바탕에는 '불구하고의 철학'이 내재돼 있습니다. 배고픔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감행하는 역설적인 정신이 삶을 이어가는 동력이지요."
-3장에서는 '인연 사관'이라는 독특한 관점이 등장하는데요, 공동체 발전 과정을 인연사관에 따라 해석하신다면?
"고독과 욕망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항상 공포심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인연', 즉 인간관계를 맺는 건 공포심을 줄이기 위해서였죠, 가족공동체가 생겨났고, 구성원들이 딴 열매와 사냥감을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심은 종족공동체를 잉태했습니다. 국가공동체와 종교공동체 등도 모두 고독과 욕망, 공포심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바 큽니다."
박 교수가 이 책의 말미에 적어놓은 국내외 '참고문헌'만 해도 400여 개에 달한다. 탈레스, 소크라테스 등 서양의 고대 철학자와 동양의 공자, 맹자에 이르기까지. 금강경 등 종교서적과 톨스토이, 루소, 박경리 소설 등도 적시됐다. 각종 철학서와 경제서적, 환경서적 등 인문학적 자료들을 총망라하면서 정치학과 경제학, 생태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박 교수는 그 결과물로 '인연 휴머니즘'을 설파했다. 왜 고독과 욕망 투성이인 인간에게 배려라는 삶의 기술이 필요한지, '네가 괴로우면 내가 행복하다'가 아니라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지속가능한 공존의 이치를 역설한다. 자연이 오염되면 인간도 오염될 수밖에 없는 인연의 끈을 학문적으로 규명했다.
이러한 지난한 집필 과정을 통해 발간된 '인간론'의 귀결점은 현실과 동떨어진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마지막 장인 5장의 '인연 휴머니즘'을 통해 '인간적인 인간'을 정의한 뒤, 우리나라 현실에서 정치가 지향해야할 방향과 구체적인 실천 전략으로 '3공주의'(공생, 공화, 공영)와 '3생정치론'(생산의 정치, 생명의 행정, 생활의 자치)을 제시한다. 박 교수는 이를 하나의 구호로 정리했다.
"시민참여와 국민복지 확대로 민족통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