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도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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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에 기재된 Faculty(교수진)라는 단어를 보니 오랫동안 남편이 강사로 재직했던 학교의 홈페이지에 실린 같은 과 교수님들의 사진을 보면서 느꼈던 부러움, 남편은 언제 교수가 되나 막막했던 마음, 다음 학기에 또 수업을 맡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늘 도사리고 있던 불안함 같은 것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말했다.
"메일 끝에 이 서명 3줄을 적기까지 참 오래 걸렸네. 고생 많았어."
그가 말했다.
"그러네. 당신도 고생 많았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실감은 사무실에 앉아 회사의 서류를 검토하는 8시간의 업무 시간이 아니라 출입증 카드를 회사 건물의 보안 출입구에 댔을 때 초록불과 함께 유리문이 열리는 순간 더 강렬하게 경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집을 계약했을 때도 그랬다. 저기서 살고 싶다고 오래 생각만 하고 있었던 아파트 단지에서 드디어 살게 된 것을 실감했던 때는 무사히 잔금을 치르고 부동산에서 계약을 마무리했던 순간이 아니었다. 인테리어를 끝내고 이삿짐을 들이던 순간도 아니고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을 때였다.
종량제 쓰레기통을 열 수 있는 카드를 기계에 태그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의 뚜껑이 열리는 순간, 내가 계약서를 쓰고 그 돈을 치러서 산 것은 이 단지의 음식물 쓰레기 배출 카드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인간이란 긴 시간 넓은 공간에 스며들어 있는 경험보다 손에 잡히는 뭔가, 눈에 보이는 뭔가를 매개로 응축된 것에 더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반대로 작고 사소한 어떤 것이, 크고 중요해서 한 번에 파악할 수 없는 본질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회사에서 매일 워크로그라는 것을 쓴다. 누가 나에게 어떤 업무를 의뢰했고 그 일을 다 하는데 몇 시간이 걸렸는지 하루 8시간의 업무시간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그 기록은 나에게 업무를 의뢰한 팀에 내 인건비를 청구하는데 쓰이기 때문에 매달 마지막 날이 되면 그 달 치 워크로그도 작성이 완료되어야 한다.
매일 업무 일지에 누구에게 의뢰 받은 어떤 일을 몇 시간 했는지 써뒀다가 월말이 되면 한 달 치 워크로그를 업데이트하는지라 월말이 되면 슬슬 스트레스가 차오른다.
엄밀히 따지자면 회사 일을 하는 것이 본질이고 한 일에 대한 워크로그를 쓰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지만, 월급은 이 워크로그에 적힌 결과에 따라 정산되니 어떨 때는 회사일을 하고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한 일에 대한 워크로그를 쓰고 월급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워크로그를 쓰기 싫다는 마음이 올라올 때면 이게 내가 매일 하는 일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자고 자기 최면을 건다. 이거 쓸 시간에 일을 더 하거나 쉬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생각하며 워크로그를 쓴 지 몇 년 만에 내린 결론이다.
어차피 해야하는 일인데 불평을 하느라 내 스스로가 브레이크를 걸어가며 동시에 액셀을 밟으며 나아가려고 하는 것 같은 엇박을 냈구나 깨달았던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소한 것에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게 정성을 들인다. 아마도 부차적이고 작은 일로 치부되는 것들이 사실 본질적이고 거대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악마는 혹은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 게 결국 그런 뜻인가 싶기도 하다.
겪어봐야 아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