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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또 유예... 준비 부족? 3년 동안 뭐했나"

[스팟인터뷰] 권영국 변호사 "생명·안전 두고 거대 여야 협잡... 총선 의식한 합의"

등록 2023.12.04 13:34수정 2023.12.0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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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인 SPC 회장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노동자 사망사고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제빵공장 기계장치 끼임 사망사고 등 연이은 중대재해 발생 문제에 대해 사과하자,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대표를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가 허 회장을 바라보고 있다. ⓒ 유성호

  
"사업장 규모에 따라 생명과 안전을 달리 보겠다는 건가."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내년 시행 예정이었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을 2026년까지 2년 더 유예하기로 한 가운데, 산업재해 진상조사 활동 전문가인 권영국 변호사는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그동안의 약속과 정책들이 모두 국민을 기만하는 말에 불과했다"며 분노했다.

그는 4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기업의 준비 부족을 핑계로 50인 미만 사업장에 사실상 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것 같다"며 "중대재해법은 다시 유예할 게 아니라 (그동안의 유예기간 동안) 이미 준비가 다 끝나 있어야 했다. 이번 결정은 안전 문제에 대해 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우리 사회에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 변호사는 구의역 김군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장, 태안화력 김용균 특조위 간사, 평택항 이선호 법률자문위원, DL이앤씨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 등 노동·산재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변호 활동을 주로 맡아왔다.

이번 유예 결정에 대해 정부여당은 "기업이 충분히 준비토록 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으나, 권 변호사는 "적극적으로 법을 시행하면서 지원하고 교육해야 할 문제이지, 유예한다고 해서 준비가 더 이뤄지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다음은 권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50인미만 사업장에 사실상 적용 않겠다는 신호"

- 당정이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기로 했다.


"유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생명과 안전의 처우를 달리하겠다는 것인데, 헌법상 생명권과 안전권이라는 기본권 차원에서 보더라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합의다. 이미 중대재해의 80% 이상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을 이렇게 다시 유예하겠다는 건 산재를 줄이겠다는 그동안의 약속과 정책들이 모두 입발린 소리, 국민을 기만하는 말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준다."

- 더불어민주당도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혔는데.

"생명과 안전을 두고 거대 여야가 협잡을 한 것이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법을 시행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조건을 달았는데, 사실상 법을 시행하지 않겠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야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하는 상황에서 합의를 이뤘다는 의혹이 든다."

- 당정은 기업의 '준비 부족'을 유예 근거로 들었다.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진 게 2021년 1월이다. (당시 적용에서 제외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3년의 유예기간을 줬는데도 준비를 못했다는 건 준비를 안 한 것이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은 지 70년이 지났는데, 이번에도 기시감을 지우기 어렵다. 준비 부족을 핑계로 50인 미만 사업장에 사실상 (중대재해법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깔고 있는 것 같다.

또 정부와 집권 여당은 그동안 '중대재해법으로 부담을 주지 않겠다', '시행령을 개정하겠다' 같은 신호를 기업에 계속 보내왔다. 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기업들은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고용노동부는 (유예 의견을 제출하기 전에) 국민 전체가 아닌 기업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러면 법 적용을 완화해야 한다는 답변이 나올 게 뻔한데, 그것을 법 유예의 근거로 삼았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식의 잘못된 설문조사다."

-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이 2026년 1월로 미뤄지면 어떤 문제가 우려되나.

"안전 문제에 대해 법이 엄격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우리 사회에 줄 수 있다. 지금도 중대재해법 사건의 기소와 판결 사례들을 보면 대기업이 다 빠져 있다. 검찰 기소를 거쳐 재판에 넘겨진 사건은 전체의 7%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상 법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법 적용을 계속해서 지연시키고, 법의 엄정함을 보여주지도 않게 되면 안전을 우선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고자 한 우리 사회의 노력이 사실상 무너지게 된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사각지대가 계속 생겨나고 있는 만큼 사고가 집중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최고경영자의 안전 의무, 수사기관이 면죄부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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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엘이앤씨 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 권영국 변호사(왼쪽), 고 강보경씨의 어머니 이숙련씨가 추모 행진을 하고 있다. ⓒ 유족

 
- 연이은 중대재해로 지탄을 받고 있는 SPC와 DL그룹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얼마 전 두 그룹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DL그룹 건설사 DL이앤씨의 경우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8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한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SPC 역시 사망사고가 반복적으로 이뤄졌음에도 경영책임자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혹이 든다. 중대재해법은 계열사의 주요 사업과 결정을 관장하는 최고경영자에게 안전 의무와 책임을 지우도록 하는 법안인데, 이조차도 수사기관이 회피하거나 면죄부를 주고 있는 느낌이다."

- 재계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조치 의무(중대재해법 4조 1항 1호)가 모호하다고 주장한다.

"전혀 모호하지 않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은 '위험성 평가를 어떻게 할 거냐', '안전보건 책임자가 제대로 관리 감독을 하느냐', '종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절차가 있느냐'는 것이다. 위험성 평가와 종사자 의견 청취 등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법이 모호하다는 건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중대재해법은 지금 와서 다시 유예할 게 아니라 이미 준비가 다 끝나 있어야 했다. 적극적으로 법을 시행하면서 홍보하고 지원하고 교육해야 할 문제이지, 유예한다고 해서 준비가 더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가 노동자의 목숨으로 기업이 운영되도록 조장하고 있다. 이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더욱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권영국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SPC #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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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하게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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