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계단을 앞에 두고 휠체어가 멈춰 선 모습 (자료사진,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은평시민신문
일상에서 우리는 자기 나름의 기준으로 타인을 규정하고 대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아테네 인근에서 여관을 운영하던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인이 있었다. 그는 여행객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우리 집에는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잘 맞는 침대가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가십시오'라고. 그는 침대보다 더 큰 사람이 오면 침대의 크기에 맞추어 다리를 잘랐다. 그리고 침대의 크기보다 작은 여행객은 다리를 늘렸다.
"형님, 제가 업어드리면 되잖아요, 오세요"는 선의의 잔인한 초대다. 내 이야기가 지워지고 왜곡되며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당연시되는 세상의 기준에 대한 숙고 없이는, 나에게 익숙해서 편안한 그 무엇이 누군가를 배제하고 억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침묵하는, 침묵을 강요당하는 삶
내가 사는 아파트의 장애인 주차장은 택배 차량과 배달 오토바이가 시동을 끄지 않은 채 상습적으로 주차되어 있곤 한다. 그럴 때,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기다렸다가 그들이 떠난 후에 주차할 때가 많다. "여기는 장애인 주차장입니다"라고 말하는 데에도 힘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루 이틀이 아니라 10년, 20년 동안 해온 나로서는 지치는 일이다. 그래서 침묵하곤 한다.
그런데 침묵이 강요될 때도 있다. 아마도 5년 전쯤, 친구들과 함께 부산 해운대에 있는 뮤지컬 공연장에 갔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뮤지컬을 관람하기 위해. 로비에서 저녁밥을 김밥으로 대신하고 서둘러 입장했다. 우리 자리는, 세로의 가운뎃줄과 가로의 4번째 줄 정도에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공연장 안내원이 나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