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8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기사로, '삼성중공업에 의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태안기름유출참사'를 상징하는 사진. 당시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소속의 최예용이 사건발생 당일인 12월7일 오후 태안 신두리 바닷가에서 찍었다.
최예용
그리고 이 사진은 2007년 12월8일, 그러니까 기름유출사고 다음날 거의 모든 조간신문에 실렸던 사진기사입니다. 참사 이후로 '삼성중공업에 의한 허베이 스피리트 유조선 태안 유류오염사고'를 상징하는 사진이 되었고 요즘도 가끔 이 사진을 사용하겠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이 사진 속의 저 가여운 새는 '뿔논병아리'라는 이름의 철새 겸 텃새입니다. 사건 당일 저는 함께 일하던 복진오 감독(현 복미디어 대표)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대뜸 "태안에서 큰 사건이 터졌대요. 서산까지 기름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서둘러서 현장에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열 일 제치고 카메라 가방을 채어 복 감독 차에 올랐습니다. 서산에 도착해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김신환 의장을 만나 태안 사고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김신환 의장은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입니다.
만리포에 벌써 기름 덩어리가 닥치고 있었고, 우리는 모래사구로 생태보호구역인 신두리로 갔습니다. 이미 기름에 뒤덮인 신두리는 검은 바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다가 백사장 위에 뭔가 작은 물체가 보여 다가갔는데 처음엔 작은 돌덩어리로 생각했습니다.
김신환 의장이 "새다! 새야! 살아있을지 모르니 부리를 잡아 올려봐"라고 소리쳤습니다.
들고 있던 카메라를 복 감독에게 맡기고 제가 맨손으로 부리를 잡아 올렸습니다. 그때 뿔논병아리가 눈을 껌뻑하며 떴습니다.
살아 있었습니다.
원유를 뒤집어써 온통 검은색이었던 새 눈의 흰자가 아니었다면 살아 있다는 걸 모를 뻔했습니다. 기름이 흘러내리는 새를 제 자리에 가만히 내려놓았습니다. 카메라를 받아서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손으로 잡은 부리만 기름기가 조금 덜어지고 몸통이 모두 새까맸습니다.
신두리 검은 바닷가에서 이 뿔논병아리를 만나고 나서 앞서 미국 신문에서 소개한 청둥오리 사체를 만났습니다.
그날 밤, 사고 현장 가까이 마련된 숙소에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이 모였고 사고지역 전역에서 기름 묻은 새들이 많다는 소식에 일단 이들을 구조하는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주방세제로 기름을 닦아내고 헤어드라이어로 말린 다음 식용유를 발라서 새의 깃털 기능을 회복시키는 조치를 한 후, 물과 음식을 주고 지켜보는 방법이 있다고 김신환 의장이 제안했습니다.
구조 준비를 하다가 문득, '아차, 아까 그 뿔논병아리도 이렇게 살릴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서 부랴부랴 다시 신두리로 갔습니다. 밤중이라 플래시를 켜고 그 뿔논병아리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신환 의장이 인근의 동물이 채갔거나, 삼성중공업 사람들이 수거해갔을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이후 우리는 몇 달 동안 기름 묻은 새들 백 여 마리를 구조했습니다. 일부는 죽었고 일부는 살아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뿔논병아리의 자연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날 그 뿔논병아리가 살았을 거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더라도 몇 시간 아니 며칠을 더 살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