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요양보호사 신고로 현장 출동했는데... 기도를 했다

[현직 경찰관 이야기] 아들 쓰러진 것도 모르고 바나나 드시는 치매 아버지

등록 2023.12.10 10:59수정 2023.12.10 10:59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울의 최일선 지구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직 경찰관이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한 필자는 어제도 '남녀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교제폭력 현장과 교통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다쳤다는 현장을 출동하면서 오전을 보냈다.


지구대 3층 구내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뒤 다시 신고 출동을 한다. 오후 1시 40분쯤이었다. '남자가 숨을 안 쉬는 것 같아요. 저는 요양보호사입니다'라는 신고를 접수하고 후배 경찰관과 함께 신속하게 현장으로 출동했다.

신고 발생지인 3층 가정집으로 2분 50초 만에 도착해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곳에는 80대 후반의 중증치매 아버지와 50대 후반 아들 둘이 사는 집이었다. 자치단체의 도움으로 치매 어르신은 '치매환자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어 지정된 요양보호사가 1주일에 5일 동안 매일 방문해 어르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도움을 주고 있었다.

의식 잃고 쓰러진 아들

이날도 그랬다. 최초 신고자인 요양보호사는 치매 어르신 집에 정기 방문했다가 현장을 목격한 것이었다. 처음 경찰관이 도착했을 때 치매 아버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요양보호사는 방 안 침대에 누운 상태의 의식 없는 남성인 아들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었다.
 
a

누구에게 필요한 심폐소생술 교육 경찰관인 필자는 의무적으로 교육을 이수하고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 박승일

 
필자와 함께 출동한 후배 경찰관이 인계 받아 CPR(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리고 요양보호사에게 발견 당시 상황에 물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어르신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아드님께 인사하려고 안방을 가 봤는데 의자에 앉아 있어 인사를 해도 말이 없어 가까이 가보니 의식이 없어 자신이 침대에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서 119와 112에 신고했다"고 했다.

현장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소방과는 119로 다시 전화를 걸어 후배 경찰관이 실시중인 심폐소생술의 강도와 속도에 대해 지시를 따라가며 계속 진행했다. 그리고 무전으로 AED(자동심장충격기)를 요청했다. 단 1초라도 빨리 조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무전을 받고 다른 동료가 가져온 자동심장충격기 패드를 의식이 없는 아들의 몸에 부착하고 안내 멘트에 따라 실시하던 중 119소방구급대가 도착했고 구급대원은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그제서야 한 발 물러나 후배 경찰관과 필자는 방 안 아들의 생활 반응에 대한 이미지 촬영을 실시했다. 그리고 거실로 나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낡은 소파의 가장 끝자리. 얼마나 그 자리에 앉았는지 충분히 짐작될 만큼 푹 꺼진 쇼파에 앉아 있던 중증치매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표정. 다급한 요양보호사의 전화.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경찰관들의 큰소리와 행동. 쉴새없이 움직이는 소방관들의 모습. 그분에게는 그런 모습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다소 평온하다 못해 인자한 얼굴 아래 양손에는 바나나 한 개가 들려져 있었고 아주 조심스럽고 천천히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입을 크게 베어 물었다.

필자는 걸음을 멈추고 그분의 행동을 한동안 묵묵히 지켜봤다. 처음에는 '아니 아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리 치매가 심해도 저렇게 모를까'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까

가급적 신고 출동 현장에서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단히 노력한다. 아마도 필자뿐만 아니라 모든 경찰관들이 그럴 것이다. 그런데 참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 홀로 살아가야할 저 어르신은 어찌할 것이며, 아들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또 뭔가. 필자는 기도를 했다. '하느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세요. 제발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 아버지를 보세요. 제발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몇 입 더 베어 물던 바나나의 끝이 보였다. 어르신의 얼굴 표정에도 조금 전과는 다른 아쉬움이 묻어 있다. 다시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이 상황을 어르신이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아니, 차라리 잠시 정상적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모른 척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이 더 힘들 테니까요'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어제 만난 치매 어르신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런 상황을 전혀 인지할 수 없을 만큼의 중증 치매였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주던 아들이 하늘나라로 떠난 것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원으로 이송하고 몇 시간 뒤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여느 때와 같이 아쉬움이 남는다. 필자는 이제야 고작 3년여 최일선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동안 직접 심폐소생술을 4번 실시했고 그런 현장에는 10여 차례 출동했었다.

물론 생명을 구한 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때도 있다. 분명한 건 모든 현장은 각각의 사연과 다양한 상황이 있지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어제도 그랬다. 그래도 생명을 구하지 못한 아쉬움은 여느 때보다 크다. 그래서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끝으로 홀로 남겨진 치매 어르신의 건강과 하늘나라로 떠난 아드님이 좋은 곳에서 아무걱정 없이 편히 쉬셨으면 한다.
#경찰 #박승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