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대통령이 숨을 거둔 방늦게까지 저술 작업을 하다 하인에게 불을 꺼달라고 했던 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아들 아치는 아버지의 죽음을 유럽에 있는 형제들에게 알리면서 'The Old Lion is Dead.'라는 유명한 전언을 남겼다. 땅을 밟고 서서 별을 쫓으라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명언이 묘소 앞에 놓여있다.
장소영
1919년 1월 6일 테디 루스벨트는 영면에 들었다. 그의 관심밖에 있던 작은 나라, 강대국 간의 친선 밀약만으로도 쉽게 국권을 앗을 수 있었던 힘없는 나라, 왕의 면전에서 딸이 안하무인 방종할 수 있었던 '이미 운명을 다한 듯한' 나라, 지도에서 지웠다고 생각했던 그 나라에서 그가 숨을 거둔 지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거센 태극기의 물결, 3.1 운동이 일어날 것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세계 최초라 할 수 있을 전국적 비폭력 만세 운동이었다. 러일 전쟁을 종결시킨 공으로 그는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었다. 조선을 건네주고 얻은 상이나 다름없었다.
만남 당시 밀약 체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루스벨트 대통령. 그럼에도 그는 선물은 받아 걸고, 두 독립운동가들은 워싱턴으로 돌려 보냈다. 아마도 루스벨트는 그가 돌려세운 젊은이가 후일 그가 끝장낸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될 것을 짐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묘소가 있는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헤어진 가이드였다. 내 부탁을 받고 바로 큐레이터에게 문의를 했더니, 다음 두 문장의 정보만을 찾을 수 있었단다.
"The item is black lacquer with mother of pearl inlay. It's from the 17th century and was given to Theodore by the King of Korea. (17세기에 만들어진 검은 칠기 위에 새겨 넣은 자개 작품으로, 조선 국왕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선물했습니다.)"
생뚱맞은 위치에 걸린 나전칠기가 이승만, 윤병구 두 분에 의해 전달된 것임을 빠르게 확인하게 되어서 감사했다. 가이드에게 답장을 썼다. 한국 역사에서도 사가모어힐은 중요한 곳임을 짧게 설명하고 1905년 8월의 뉴욕타임스 기사를 첨부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앞으로는 빼놓지 말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 여기까지 왔던 이들이 드린 나전칠기 작품도 소개해 달라고.
방문하고 기억하길 바라며
저택에 가볼 생각이라면, 번거로워도 꼭 예약을 하고 저택 가이드 투어를 꼭 하면 좋겠다(https://www.recreation.gov/ticket). 특히 미국 뉴욕과 롱아일랜드에 살고 계신 분들이 자녀와 함께 가보시길 바란다.
나전칠기 작품을 소개하지 않고 건너뛰려 하는 가이드를 붙들고, 저것이 뭔지 아느냐 꼭 물으셨으면 좋겠다. 구구절절 슬픈 역사를 다 말해주지 않아도 한국 독립운동가들이 여기까지 왔었음을 알려주면 좋겠다.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당시 3선, 4선에 도전하려는 야심을 부리다 저물었고, 그를 만났던 이승만 대통령 역시 장기집권 끝에 하야했다. 초심을 잃은 야욕의 결과 같다.
공과 흠결이 이미 널리 알려진 분보다는, 잊히고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면 좋겠다. 그분들을 기리고, 알고, 살필 수 있는 일에 이미 시간을 너무 지체했으니까.
보훈처의 홍보 영상 첫 화면 두 초상 중 오른쪽에 계신 분. 이 분이 바로 평생을 독립운동과 교육, 목회를 하며 독립을 후원했던 헤이그 밀사의 통역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윤병구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