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8월 충남도청에서 반대 주민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무한정보> 최효진
고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몇 개의 글이 잔잔한 파장이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조곡산단 반대 투쟁을 참여하며 느낀 일종의 반성문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7일 올린 글에 따르면 "다른 지역으로 결정됐다고 믿고 우리 지역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마음으로 살았다. 심지어는 펼침막이 있어도 무관심했다"며 반성했다.
그러면서 반대행동에 전체 주민이 나서줄 것을 요청할 때 협의회장이 "산업단지가 들어오면 안된다는 것을 주민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왜 가만히 있겠는가? 그건 대형 양계장이 들어올 때, 고속도로가 생길 때 등 피해 당사자로 힘겨운 싸움을 할 때, 나몰라라 외면하지 않았는가. 결국 힘이 약해 다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에게 누가 동참하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했을 때,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아픔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거대 권력과 싸우려면 눈곱만한 힘 하나라도 보태야 하거늘,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꽁무니 뺀 점. 나이 먹었다는 핑계로 마을 일에 무관심했던 점을 반성한다"는 글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임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고의숙씨와 조순희씨, 두 사람은 요즘 펼침막을 게시하러 다니고 있다. 하지만 펼침막이 하루 만에 떨어진 곳도 있고, 어느 곳은 일주일 혹은 2주일 만에 사라지고 있다. 그는 펼침막을 훼손하는 사람들에게 "제발 걷어가지 마시라. 우리는 이 거대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울 무기가 없는 힘없는 주민이다. 이렇게라도 부당함을 알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라고 호소한다.
언제나 함께인 조순희씨는 길을 사이에 둔 이웃사촌이다. 예산에 주소를 둔지는 2년이 됐다. 그 이전 5년을 부천과 예산을 오가며 지내왔다. 그의 남편인 김광호씨는 추사 김정희선생의 종손이다. 부천시 중동에서 주민자치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조씨는 첫 번째 주민설명회가 무산된 10월 31일 처음으로 조곡산단이 오는 것을 알았다.
"조곡산단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진짜 아무도 말 안 해줬어요. 심지어 원주민도 모르셨어요. 응봉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으니, 갔나보다 그러고 있었어요. 지나가다 펼침막을 봤는데 얘기를 안 해주니까, 어디 멀리 있는 데인 줄 알았어요. 그저 '예산 너무 좋아' 이러면서 다녔죠. 그런데 하루아침에 조곡산단이 바로 근처까지 온다고 했어요. 기가 막혀서"
사실 그는 조곡리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지도 조차 몰랐다. 2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두 사람은 조곡산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예산을 선택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실제 옆에 터를 닦고 입주를 준비하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고 있다.
조씨는 "올봄에 이사 오기로 했던 사람이었어요. 터를 닦다가 결국 그만둔 것 같아요. 입주를 포기하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했다.
이제 막 은퇴하게 돼,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였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조곡산단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함께하던 사람들은 떠나기도 하지만 반가운 소식도 있다. 지역의 시민단체가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얼마 전 예산참여자치시민연대, 전교조, 농민회 등에서 활동에 동참하겠다고 의사를 전했다.
이들은 "함께해 주신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반대대책위를 중심으로 주민과 함께 싸워 나가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당진의 작은 냇물에서 시작된 발걸음이 흘러 흘러 '오마이뉴스'라는 더 큰 바다에 닿았습니다.
평범한 이웃들의 삶 속에 숨겨진 특별함을 발굴하고, 우리 동네의 생생한 숨결을 세상과 나누고 싶습니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진정성 있는 시선으로,
작지만 큰 울림을 주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여러분의 삶 곁에 늘 머무는 따뜻한 기록자가 되겠습니다.
공유하기
나이 70에 쓰는 투쟁기, 길 위에 선 사람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