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찌르개와 외면찍개
주간함양
경남 함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문화 행사 또는 활동을 심층적으로 담는다. 교육과 문화는 지역의 잠재력이자 지역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대변하는 분야다. 이에 <주간함양>은 함양 안에서의 수많은 교육·문화 활동이 독자들에게 생생하고 매번 신선하게 체감될 수 있도록 '교육·문화 포커스' 코너를 마련했다. 매월 둘째 주, 셋째 주 교육·문화 현장에 한걸음 더 들어가 담아낸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하고자 한다. - 기자 말
갑진년 새해를 맞아 함양에 살았던 첫 사람의 흔적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8월 4일까지 함양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함양 첫 사람의 발자국-함양 죽곡리유적' 특별전에는 함양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작점이되는 구석기시대 유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1972년 가야 갑옷이 출토된 함양 상백리고분의 발굴을 시작으로 50년간 함양에는 많은 유적들이 발굴됐다. 1980년에는 20개의 가야시대 고분이 모여 있어 경남 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된 가야시대고분인 함양 백천리고분군, 청동기시대 대형 고인돌이 발굴된 수동면 화산리유적, 물레방아공원 조성에 따라 발굴된 신석기 유적인 안의면 하원리유적 등 함양의 발전과 개발에 의해 크고 작은 발굴들이 진행됐다.
이번 전시는 함양 백원유원지 조성사업에 따라 함양 죽곡리유적에서 2019년 처음으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굴됐고, 함양군 역사의 시작을 증명할 수 있는 유물이 출토돼 그 의미가 크다는 점에서 특별전으로 기획됐다. 함께 출토된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유적과 유물도 특별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석기 문화층에서는 함양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는 구석기시대 대표유물 뗀석기들이 발굴됐다.
2018년 2월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매장문화재의 정확한 분포 범위와 유물의 유존 여부를 파악하고 공사 시행 여부를 판단하고자 표본·시굴조사가 진행됐고 2020년 발굴조사까지 2년에 걸친 조사가 이루어졌다.
함양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함양에 살았던 첫 사람의 흔적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라며 "함양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작점인 만큼 군민 및 많은 분들의 관람을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함양군에서 구석기 유적이 처음 발굴된 죽곡리유적은 죽곡천과 위천이 만나는 두물머리지점(함양 상림공원 부근)의 서남쪽 일대에 자리잡고 있다.
구릉지 경사면에서는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비교적 평탄한 지형이 형성된 북쪽 구간일대 즉, 죽곡천 및 위천과 가까운 곳을 중심으로 구석기 유물이 분포돼 있었다.
적갈색 모래질 찰흙층에 해당되는 문화층에서 발굴된 유물의 연대는 약 6만년 이전 또는 약 4.5만년 이전으로 중기구석기시대의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시간적 범위 안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죽곡리유적 구석기 문화층에서 뗀석기(돌을 깨뜨려서 만든 도구) 유물이 발견됐다.
구석기인들은 용도에 맞게 돌을 깨뜨리거나 떼어내어 도구를 만들었으며 날카로운 날의 석기로 동물 사냥, 가죽 벗기기, 살 발라내기, 땅 파기, 나무·가죽·뿔 등을 다듬는 등 다양하게 사용했다.
죽곡리유적에서 발굴된 석기 유물은 많지 않지만 대부분이 규암과 석영(맥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망치, 몸돌, 격지를 비롯해 대형 석기(여러면석기, 찍개, 주먹찌르개) 및 잔손질 석기(긁개, 찌르개, 밀개, 새기개, 슴베찌르개) 등으로 구성된다.
이중 대표적인 유물로 찍개와 주먹찌르개가 꼽힌다. 찍개는 나무를 다듬거나 짐승의 뼈를 찍고, 짐승의 살을 토막내는 데 쓰는 도구로 가장자리를 단면으로 박리한 외면찍개, 양면으로 박리해 만든 것을 양면찍개라 한다. 주먹찌르개는 타원형 몸돌의 끝부분을 때려 내어 뾰족한 날을 만든 석기로 주로 동물사냥 등에 사용됐다.
돌감의 원래 몸체는 자갈돌 형태가 대부분이며 죽곡천과 위천이 합류되는 과거의 지형 조건이 죽곡리 구석기인들의 돌감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6기가 죽곡리유적 능선의 서사면부 중심으로 밀집 조성되었고 등고선과 평행하게 설치돼 있다. 대부분의 무덤은 상태가 불량하고 훼손된 상태로 남아있다. 벽석 축조시 할석(깬돌)과 천석(강돌)을 섞어 사용했는데 주로 천석을 사용했다. 유물은 함양 백천리고분군, 공배리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와 비슷한 양식으로 대가야식 토기, 짧은 목 항아리, 긴 목 항아리, 손잡이 달린 잔, 그릇받침 등의 토기류와 큰 칼, 철제 화살촉, 철제 낫 등이 출토됐다.
조선시대 분묘는 정상부에서 11기, 남사면부에서 2기, 북사면에서 28기 등 총 41기가 조사되었으며 최근까지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분묘는 목관의 사용 여부 및 재료에 따라 널무덤과 토광묘, 독무덤으로 구분되며 토광묘가 다수를 이룬다.
유물은 백자편과 철제가위, 구슬, 청동숟가락과 젓가락, 벼루 등이 출토됐다. 독무덤은 남서쪽 주능선부에 위치했다. 조합방식에 따라 두 개의 독 입구를 맞댄 합구식과 하나의 독을 사용한 단옹식으로 구분되며 유아를 매장한 묘제로 보인다.
기와가마는 총 6기로 각 3기씩 군집을 이루고 있고 구릉 말단부 급경사면에서 위치하는데 북쪽으로는 바로 충적지인 평지와 이어지고 죽곡천과는 불과 200m 정도 떨어져 있다. 기와의 주원료인 토양, 물, 땔감 등의 원활한 수급을 위한 것으로 재료의 조달 및 수요처까지의 운송 편의성도 고려한 입지 선정으로 보인다.
구조는 기반층을 굴착하고 조성한 지하식 구조로서 평면형태는 모두 'l'자형을 띠고 있다. 회구부(재와 기와 등이 퇴적된 곳), 연소부(열을 가하는 곳), 소성부(기와를 쌓아 굽는 곳), 연도부(연기가 빠져나가는 부분) 등 구조적 특징상 15세기 중반에서 후반부에 이르는 단기간에 조업을 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수막새, 수키와, 암키와가 출토되었고 기와 외면에 타날된 문양은 직선계 집선문과 곡선계 집선문으로 구분되며 기와 가마의 생산품은 함양읍성에 공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특별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함양군 문화시설사업소 함양박물관으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