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쁘죠? 이뻐서 이름도 '미라리'예요

[지방소멸대응프로젝트 완도의 숲과 나무] 미라리 상록수림

등록 2024.01.12 11:22수정 2024.01.1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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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

"으디가요?"
"미라리 갑니다."
"미라리? 미날리 말이여?"


전남 완도 소안도 사람들의 통상적인 대화 중에 들리는 말이다.


예로부터 마을 주변의 풍광이 비단결처럼 곱고 아름다워 미라리(美羅里)라 불렸다는 소안면 미라마을.

미라마을은 소안도에서 가장 큰 마을로 현재 170여가구 35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평산 신씨(平山申氏) 족보에 의하면 조선 효종 때(1650년경) 평산 신씨가 터를 잡은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후 김해김씨, 밀양박씨, 제주고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이 형성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 뒤로 소안도의 진산인 가학산(駕鶴山)이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남쪽사면은 물이 풍부해 논농사도 많았던 곳이다. 

소안도의 길지(吉地)로 많은 인물이 태어났는데 대표적인 인물은 독립운동가 박흥곤(朴興坤) 선생이다. 박흥곤 선생은 미라리에서 태어나 1920년대 애국지사 송내호(宋乃浩), 강정태(姜正泰), 신준희(申竣熙)선생 등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비밀결사 조직인 배달청년회, 살자회의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선생은 노농대성회 사건으로 투옥돼 모진 고문 끝에 출옥했으나 1925년 21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국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했다. 
 
완도신문

미라마을은 작은 어촌마을이지만 주변의 풍광이 워낙 아름다워 8경이 전해져온다.  

1경은 학산귀운(鶴山歸雲) 가학산에 비 내린 뒤 걸친 구름. 2경은 대동장천(大洞長川) 가학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골짜기의 시냇물. 3경은 미포귀범(美浦歸帆) 미라리 포구로 돌아오는 만선의 돛단배. 4경은 부아망월(負兒望月) 마을 동쪽 아부산에 떠오르는 보름달. 5경 전방가림(前坊嘉林) 마을 앞의 아름다운 상록수림. 6경 용담괴혈(龍潭怪穴) 마을 앞의 해식동굴로 용이 살았다는 굴. 7경 강빈어화(綱嬪漁火) 조강나루에서 밤이면 등불을 켜고 그물로 멸치 때를 잡는 배 8경. 오산낙조(烏山落照) 오산의 저녁노을.


마을 앞 조강나루(미라리상록수림 앞 400여m의 청환석 짝지를 여기서는 조강날이라 한다)를 감싸고 있는 방풍림이 있으니, 바로 미라리상록수림(美羅里常綠樹林, 천연기념물339호)이다. 미라 8경중 5경인 전방가림으로 이곳은 마을의 남쪽 바닷가 1만6000㎡(4800평)의 면적에 수백 년 된 해송, 후박, 광나무, 동백나무 등 24종 800여 그루의 나무들이 거친 해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주고 있다.
 
완도신문

이 숲은 마을의 방풍림 역할뿐만 아니라 마을주민들의 안녕과 풍년·풍어를 기원하는 기복신앙(祈福信仰)의 대상이었다. 예로부터 미라마을 주민들은 음력 설 무렵 이 숲 주변에서 마을의 동제를 모셨다고 하나 특정한 당신(堂神)은 없었으며 지금은 마을 위쪽 가학산의 가장자리에 당집만을 만들어 놓고 제는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섬 지역 모든 마을의 마을 숲이 당(堂) 숲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이 많은데 반해 미라리상록수림의 경우 미라마을의 당 숲으로서의 가치도 지녔지만 마을을 해풍으로부터 보호하는 방풍림으로서 역할이 더 컸다고 한다.


이는 마을의 공간구조가 소안도의 진산인 가학산을 주산으로 터를 잡아 아늑하면서도 앞으로는 제주바다와 바로 연결되는 구조여서(背山臨水) 여름철 태풍이 불 경우 동쪽은 금강산(金剛山, 미라마을 포구를 감싸주는 마을 앞 산)이 막아주지만 여름철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은 방풍림이 없다면 자연 앞에 인간은 속절없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당 할 수밖에 없는 공간구조여서 미라리상록수림은 방풍림으로서 역할이 매우 컸다.
 
완도신문

특히 상수도 수원지 조성으로 지금은 수몰 된 미라8경 중 2경인 대동장천 주변은 가학산의 풍부한 물이 사시사철 흘러 미라리 주민들이 쌀농사를 지을 수 있는 문전옥답(門前沃畓)이 있는 식량창고나 다름없었는데, 밭농사나 논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절실했다.

오늘날 미라리상록수림과 조강나루는 여름철이면 해수욕장으로, 봄·가을에는 휴양림으로 다양한 기능을 하고 있다. 또 제2의 미라리 상록수림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지금은 폐교가 된 옛날 미라초등학교의 교정과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100여 그루의 후박나무 군락이다. 

개구쟁이 어린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는 사라졌지만 학교의 역사와 같이하는 후박나무 군락은 8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더욱 무성해져 다른 나무와 혼합림이 아닌 후박나무 독립체의 무성한 숲을 형성하고 있어 인간의 훼손이 특별히 안 미친다면 숲의 미래는 매우 밝다 할 수 있다.   

마을 주민 신덕순 (80, 소안면 미라리)씨를 만났다.

미라리에서 태어나 미라리에서 결혼해 80년을 살았다는 신덕순씨는 미라리상록수림의 경계선에서 살고 있다. 신씨는 상록수림이 그냥 나무가 아니라 태풍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주는 보물이라고 추켜세웠다. 
 
완도신문

"쩌 숲은 우덜한테 아조 보물중에 보물이여. 쩌 숲이 없었다면 이 많은 마을 사람들이 어찌게 곡석을 해 묵고 살었것어. 안타깐 것은 옛날에는 나무들이 바다가 안보이게 많앳는디 지금은 태풍이 올 때 마다 나무들이 부지러져 불고 그래.

해풍리(조강나루의 동쪽)쪽은 괜찬한디 그물뜨레기(조강나루의 끝)는 나무가 많이 죽었어. 우리집 밭도 이 나무 덜 덕분에 채소나 곡식이 잘 된당께. 올해도 고추를 징하게 많이 땃어.

우슨 소리 한마디 할람마. 여그 조강날(조강나루)이 우리마을 애기들의 놀이터이자 헤엄을 배우는 학교여 학교. 여름방학이 되먼 전부다 여그서 모여서 놀고 헤엄을 배와, 내가 열 여덥살 때 조강날에서 런닝구만 입고 챙피한지 모르고 헤엄을 쳤는디 우리 새끼들 너이도 나랑 똑 같이 거그서 헤엄을 쳤어. 방학때먼 아침밥 묵고 나가먼 점심도 안묵고 하래내내 놀다가 저닉에 껌해서 집이 들어와."

겨울철 조강나루의 해뜨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다며 오늘 저녁은 미라리 펜션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출을 보고 가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구름 걷은 후에 햇볕이 두텁구나

배 띄어라 배 띄어라

천지가 얼었으나 바다만은 여전하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끝없는 물결이 비단을 편 듯이 하여있다.

- 漁父四時詞 中 冬詞 -


유영인  다도해해양문화연구원 원장
 
완도신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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