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골짜기의 삶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눈내린 앞산, 하늘 오가는 새들... 두터운 비닐로 추위 막은 가게도

등록 2024.01.13 10:30수정 2024.01.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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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의 겨울 모습은 언제나 차분하다. 눈 내린 앞 산이 조용히 앉아 있고, 하늘 속을 오가는 산새들도 날갯짓이 더디다. 한 겨울, 조용히 숨만 쉴 것 같은 골짜기는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골짜기를 가른 도랑물은 일 년 내 옹알거리고, 봄이면 봄대로 삶이 있으며 겨울이면 겨울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각종 농산물을 팔던 도로변 가판대도 조용히 문을 닫았는가 하면 아직도 이어지는 곳도 있다. 


봄부터 비스듬한 비탈밭은 한껏 부풀어 있었다. 어린 옥수수 초록 모종이 나풀거리고, 비탈밭 배추가 몸집을 불리는 초봄부터다. 봄바람에 아른 대던 초록이 어떻게 버틸까 의심했지만 모진 바람에도 끄떡없었고, 세찬 여름비를 거뜬히 버텨냈다. 서서히 여름이 다가오면서 길가엔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변 나무 그늘엔 가게가 들어섰고 지나는 손길을 잡으려는 현수막이 내 걸렸다. 수십 미터 또는 수킬로 전부터 길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다. 소위 대학 찰 옥수수라는 현수막이다. 온 힘을 다해 기른 옥수수를 팔기 위한 전략이었다. 오래전엔 든든한 간식거리였던 옥수수가 농부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효자 품목이 된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먹음직한 옥수수는 지나는 길손의 발을 잡기에 충분했다. 옥수수만 팔긴 뭣했는지 더러는 어묵도 곁들여 내놓았고, 늙은 호박과 푸성귀도 등장했었다. 

여름이 깊어지고 가을로 접어들었다. 곳곳엔 현수막의 내용이 바뀌었다. 김치를 판다는 문구와 절임배추를 주문받는다는 현수막이었다. 골짜기 곳곳엔 현수막이 들어섰고, 시골동네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여름내 옥수수가 효자 종목이었다면 가을엔 배추와 무가 농가의 주 종목이 된 것이다. 골짜기 사람들을 신나게 해 주었던 옥수수와 김치의 계절이 지나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았던 가판대는 찬바람과 함께 자리를 감추었다. 

거리의 상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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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풍미했던 길거리 가게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봄을 준비하고 있다. 문을 닫고 봄을 기다리는 곳, 아직도 성업중인 상점도 있다. 삶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삶의 현장이 다양한 모습으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 박희종

 
길가 곳곳엔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농산물을 진열했던 좌판과 천막은 끈으로 묶어 놓았다. 아직도 떼지 못한 현수막은 바람에 나부끼지만 지난 계절을 풍미했던 천막과 가판대는 길가에 그대로 놓여있는 것이다. 찬 바람과 함께 하얀 눈이 쌓인 썰렁함은 골짜기에 겨울이 왔음을 알려주는 풍경들이다. 곳곳엔 아직도 남아 있는 흔적만 있지만 겨울 들어 새로 자리 잡은 가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번듯한 가게가 아닌 길가에 문을 연 상점들이다. 

언제부턴가 음식점을 찾는 기준이 달라졌다. 깨끗하기보단 왠지 시골스런 식당, 간판도 낡아 벗겨지고 주인도 어른스러운 곳을 선호한다. 어쩐지 천정이 낮아 한번쯤 올려보게 되는 가게, 조금은 찌그러진 양푼이 눈에 익은 상점들이다. 음식맛도 절절하고 삶의 향이 가득 담겨있을 것 같아서다. 길가의 상점들을 선호하는 이유다.  왠지 눈에 익숙해 덤이라도 한 개 줄 것 같은 아저씨가 반갑고, 한 마디 건네도 받아 줄 것 같은 할머니가 더 편하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준 삶의 방식이다.  


우리의 삶은 오래전부터 그랬다. 어디에 사는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와 연관이 있는지 알아내야 마음이 편했다. 조금은 까탈스러운 얼굴이 아닌, 삶의 무게가 얹힌 얼굴이 그리웠다. 쉬이 갈 줄 몰랐던 세월 속을 헤맸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길가에 자리 잡은 소박한 가게에 눈길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찬바람이 불며 골짜기의 삶이 가쁜 숨을 고르는 듯 하지만, 주인 없는 무인 가판대에는 아직도 갖가지 농산물이 놓여있다. 추운 겨울에 누가 찾을까 하지만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오고 가는가 보다. 

겨울에도 사람 발길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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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위를 녹여주는 찹쌀호떡 가게다. 한가한 시골길에서 만들어지는 호떡, 두툼함으로 흐믓하고 따스함으로 훈훈함을 준다. ⓒ 박희종

 
플라타너스 가로수 아래 '무인 판매'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여름부터 무와 배추가 등장하더니 가끔은 열무가 등장했다. 다양한 농산물만 선을 보였는데, 어느 날부턴가 뻥튀기 과자가 등장했고 덩달아 참깨와 버섯가루도 등장했다. 무인 판매점이니 사람이 있을 리 없고 단지 돈을 넣는 상자가 놓여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가을엔 누런 호박이 등장했었고, 먹음직한 노각도 자리를 차지했었다. 가을 농사가 마무리되고 찬바람이 불어오면서도 무인판매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 년 내내 사람들이 외면할 수 없는 과일상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골짜기에 겨울이 찾아오면서 추위를 막으려는 노력이 곳곳에 보인다. 두터운 비닐로 가게를 에워쌌고 훈훈한 난로도 등장했다. 두터운 비닐을 이용해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고, 밖에선 과일을 살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도 숨어 있다. 한 사람의 손님도 허투루 돌려보낼 수 없다. 만원을 내고 얼른 들고 갈 수 있도록 봉지마다 준비를 해 놓았으며, 쉽게 잡을 수 있는 손잡이도 빼놓을 수 없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지만 아직은 버틸 만 해 퇴근길 손님 발길을 그냥 두지 않는다. 여기에 겨울을 뜨겁게 데워주는 가게도 등장했으니, 오래전 추억을 불러주는 호떡 가게다. 

초겨울이 되어 널찍한 길가에 호떡가게가 자리를 잡았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에 번쩍 띄는 현수막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떡을 굽는 판이 있고, 고소한 기름냄새가 피어난다. 추위를 마다하고 긴 줄에 들어섰지만 오로지 달콤한 호떡을 먹을 수 있다는 설렘으로 참아 내야 한다. 긴 줄에 기다리면서 앞사람의 호떡은 빨리 익어 내 차례가 오길 고대한다. 긴 기다림 끝에 찾아온 내 차례, 아내가 호떡을 좋아하는데 몇 개를 더 사야 할까? 순간의 망설임 끝에 아내의 몫도 주문하고, 추억 속의 호떡을 한 입 베어 물며 추운 겨울을 잊어 본다. 

골짜기의 삶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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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찾아 온 골짜기는 아름답다. 하얀 눈이 내린 골짜기에 추위가 만들어준 풍경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겨울을 축복하고 있다. 잠시 멈춘듯 하지만 삶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골짜기는 오늘도 고요함 속에 바쁘게 이어진다. ⓒ 박희종

  
추운 겨울이지만 골짜기의 삶은 쉼이 없다. 눈치 없는 이웃집 닭이 새벽부터 울어대고, 동네 지킴이는 하늘을 보고 짖어댄다. 날아가는 새를 보고도 짖고 닭이 울어도 맥칼 없이 끼어든다.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앞산은 아직도 조용해 골짜기의 삶은 쉬고 있는 것 같지만, 저마다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기다란 가로수 메타쉐콰이어는 흔들거림으로 겨울을 알려주고, 하얀 눈은 포근함으로 겨울을 감싸준다.

봄부터 가을까지 사람들을  흥분시킨 길가의 좌판들도 숨을 고르며 새봄을 준비한다. 대부분이 골짜기의 삶의 흔적들이 배어있는 농산물이었다. 새봄 좌판을 채워 줄 농사를 위해 준비를 해야 하고, 겨울 가판대를 단속해야 했다. 찬 바람과 함께 찾아온 하얀 눈이 쓸쓸함을 불러왔지만 그 속에도 삶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추운 겨울을 온전히 보내야 새 봄 골짜기의 활기찬 삶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찬바람 부는 골짜기에는 옹알거리는 도랑물이 있고 동네를 오가는 산새들도 있다. 앞 산을 오가던 고라니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엊그제 내린 하얀 눈이 풍성하게 쌓여있다. 눈이 앉은 살얼음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며, 작은 소리로 봄을 부른다. 추운 겨울에도 삶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골짜기엔 다양한 식구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자연의 신비함에 순응하며 하루하루 삶의 이야기는 한 겨울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 뉴스에 처음으로 기고하는 글이다.
#겨울 #골짜기 #가게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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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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