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설 작업을 해도 내리막이 심해 며칠 지나야 통행이 가능하다.
박병춘
귀촌 2년 만에 어쩌다 마을 이장이 되어 동네 요소요소를 둘러보고 겨울철 불편함을 살펴 본다. 눈길이 얼어 빙판이 되면 천하에 어떤 차도 장사가 없다는 주민들의 이구동성에 강원도다운 게 폭설이로구나 실감하곤 한다. 연세 드신 주민들께서 기운을 모아 위험 구간의 눈을 치우고 모래와 염화칼슘을 뿌린다. 오랜 세월 함께했던 공동체 행사라서 손발이 척척 잘도 맞는다.
면사무소 주무관의 연락을 받고 마을에 나누어줄 염화칼슘 포대를 트럭에 듬뿍 싣고 온다. 1반과 2반에 고루 나누어 드리고, 마을 단톡방에 들면 따뜻한 말씀들이 봄꽃처럼 피어오른다. '이 맛에 이장하는 거다' 미소를 짓고 폭설 피해가 절대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네 가구가 모여 사는 주택 단지만 해도 제설 작업은 힘겹다. 평생 도시에서 살다 귀촌한 터라 작년까지만 해도 제설용 삽이나 넉가래를 다루는 데 서툴고 제설 근육이 알량했다. 올해는 눈이 제법 내려서 하루에도 몇 번씩 삽질을 하고 넉가래를 밀어대니 운동은 제대로 하는 셈이다.
눈을 치우다 호흡을 가다듬고 가까이, 또 멀리를 보노라면 그 풍광에 취해 힘들다는 마음이 다 녹아버린다. 한낮 햇살이 눈꽃을 떨어뜨리고, 봄맞이를 준비하는 가지의 겨울눈에 긴장감이 뚜렷하다. 나뭇가지마다 백설로 빚은 수많은 형상들이 존재하는데 예술의 극치라 해도 넘치는 말이 아닌 듯하다.
그림에 조예가 깊은 화가에게 전화를 했다.
"나 지금 백설이 빚은 기이한 형상들에 취해 사진을 좀 찍고 있는데, 이런 걸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음, 자연 미술이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자연 자체를 미술로 보면 되니까요."
등산화에 아이젠을 차지 않아도 좋은 날, 치킨에 맥주를 제안하는 친구의 속삭임처럼 살갑게 내리쬐는 햇살을 이고 백석산 임도를 따라 걷기로 했다. 물론 카메라를 멨다. 백설 덩어리가 나뭇가지에 의지하여 오르거나 기거나 눕고 걸쳐 뽀뽀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담는다. 사진에 제목을 생략한다. 온전히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