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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무섭다더니 한국에 데려가자는 아들

[아들 손잡고 세계여행] 아들은 생각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등록 2024.02.21 11:04수정 2024.02.2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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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지난 기사 '경차로 아틀라스산맥을... 9살 아들은 지쳐 눈을 감았다'(https://omn.kr/27cnb)에서 이어집니다.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 내려 우리를 단속한 경찰관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신호를 위반했다는 말인가요?"
"정지신호 위반입니다. 우회전하기 전에 차량을 멈춰야 합니다."
"저 아까 멈췄다가 우회전했습니다."
"아니요. 바퀴가 완전히 정지한 다음에 출발해야 합니다."


모로코 경찰관은 내가 지나온 삼거리 직전에 있던 일단정지 표지판을 보여주며 우회전하기 전에는 바퀴가 완전히 정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차도 보이지 않아 급한 마음에 완전히 정차하지 않고 서행하며 우회전했던 걸까? 괜한 시비를 걸려는 경찰로 보이지는 않아 '죄송하다'라고 말한 후 경찰관에게서 여권과 차량 서류를 보여줬다.

다른 경찰관이 여권과 차량 서류를 보며 아랍어로 된 종이에 무언가 한참 손으로 쓰긴 했지만,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는 않아 벌금을 내고 바로 호텔로 향했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천천히 운전하며 30여 분을 더 가자, 숙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저녁 7시가 넘어 날이 어두웠지만, 숙소 바로 뒤로는 아주 높은 모래 언덕이 보였다.


좋아하는 닭요리도 못 먹고 쓰러진 아들
  
메르주가 시가지 메르주가는 사막이 시작되는 도시이다
메르주가 시가지메르주가는 사막이 시작되는 도시이다오영식
 
지쳐서 안색이 안 좋은 아들을 침대에 눕히고 먼저 호텔 직원에게 저녁을 주문했다. 메뉴는 모로코 전통음식인 타진을 시켰는데 닭고기 찜 요리로 아주 맛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몇 번 먹다가 그대로 소파에 누워 잠이 들어버렸다.
  
작년 여행 출발 전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이렇게까지 지쳐 쓰러지진 않았던 튼튼한 아이였는데, 혹시 밤새 많이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보통 관광객은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 이동할 때 대형 버스나 소형 승합차를 이용한다. 이런 사막투어를 이용하면 12시간 동안 서너 번 휴게소에서 쉬는 게 고작이다 보니, 그럴 바엔 차라리 렌터카를 이용하는 게 시간도 절약되고 아들에게 편할 것 같았다. 짐도 많지 않아 작은 차로도 충분하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그동안 아들과 여행하며 후회한 적이 딱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시베리아에서 이석증에 걸려 쓰러졌을 때, 그리고 오늘이 두 번째로 후회한 날이다.

'태풍아,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아들을 품에 안고 밤새워 자책했다. 그리고 다음 날도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면 일정을 취소하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스페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걱정돼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들 얼굴을 계속 지켜봤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아침에 깨어난 아들은 두 눈을 아주 동그랗고 힘차게 뜨며 말했다.
 
곧바로 회복한 아들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는 차로 10시간이 넘게 걸려 어린이에게는 힘든 여정이다
곧바로 회복한 아들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는 차로 10시간이 넘게 걸려 어린이에게는 힘든 여정이다오영식
   
"아빠, 어제저녁에 뭐 먹었어? 뭐 맛있는 거 시켰던 거 같은데 난 못 먹고 그냥 잤지? 아빠 혼자 맛있는 거 다 먹은 거 아냐? 어제 저녁 먹고 게임도 하기로 했는데 못 했잖아~."
 

쉬지 않고 투정 부리며 생기 있는 모습을 보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냐, 어제 아빠도 안 먹고 너랑 같이 잤어. 게임은 지금 하자. 바로 Go~"
 

아들은 언제 아팠냐는 듯 몸 상태를 완전히 회복했지만, 오전은 호텔에서 아들과 놀며 푹 쉬었다. 오후 늦게야 점심을 먹으러 바로 옆에 있는 시가지로 나갔다.
   
사하라는 면적이 940만㎢로 지구상에서 남극 다음으로 가장 넓은 사막이다. 그리고 이 사막의 서쪽 경계가 바로 모로코의 메르주가이다. 메르주가 시가지는 아주 작아서 사막 투어를 온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 몇 개가 전부였다.

전통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시가지를 둘러봤다. 건물은 모두 흙으로 지었는지 거리는 온통 흙빛이었고, 건물이 없는 곳은 온통 모래 언덕이 높게 쌓여있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가며 아들에게 말했다.

"태풍아, 우리 조금 있다가 낙타 타고 저 사막에 갈 거야."
"낙타? 나 혼자 타? 난 낙타 무서운데…."
"아빠가 아들이랑 탄다고 얘기하니까 한 마리는 작은 낙타로 데려온댔어. 너는 어린이 낙타 타."
"정말? 알았어."


거대한 자연 앞에서 배우는 겸손

호텔 한쪽에 있던 큰문을 열자 모래 언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고, 바로 앞에는 귀여운 낙타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아빠, 얘가 어린이 낙타인가 봐. 귀엽다. 나 낙타 이름 지을래, 낙둥이!"
"낙둥이? 그래, 좋네, 그럼 아빠 낙타는 낙식이로 할게."
   

아들과 낙타에 올라타 10분 정도 앞으로 나아가자, 호텔과 주변 마을이 사막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1시간 정도 더 사막으로 들어가자, 주변은 온통 모래 언덕이었다.
  
사하라 사하라는 지구 상에서 남극 다음으로 큰 사막이다
사하라사하라는 지구 상에서 남극 다음으로 큰 사막이다오영식
 
'여기가 사하라구나!'

   
나는 사하라에 꼭 한 번 와 보고 싶었다. 인간과 인간이 만든 구조물이 아닌 자연의 거대함에 압도되어 역설적으로 그 속에서 힘을 얻고 싶었다.

어렸을 적 남극에 가고 싶어 10년이 넘게 꿈을 꾸다 기상예보관이 되었었고, 운 좋게도 몇 년 전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1년간 월동연구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남극의 바다 위에 떠다니는 거대한 빙하와 온통 눈으로 덮인 자연을 보며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진 나를 질책하고 또 지친 몸을 충전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좋았던 기억을 사하라에서 다시 느끼고 싶었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 시절 남극 킹조지 섬에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 시절남극 킹조지 섬에 남극세종과학기지가 있다오영식
 
이번 여행 중 '몽골의 대초원'과 '사하라' 이 두 곳에 꼭 와보고 싶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때문에 몽골에 들어가지 못한 게 아쉬웠던 나는 사하라만큼은 꼭 보고 싶었다.

하지만, 전날 아들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포기하고 바로 돌아갈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아들도 몸 상태를 곧바로 회복해 아들과 함께 사하라의 모래 위에 발을 디뎠다. 높은 모래 언덕 위로 올라가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봤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낙타를 한국에 데려가면 안 되냐는 아들 

아빠인 나는 말 못 할 감동을 느끼며 모래 언덕 위에 앉아 있는데 아들은 벌써 언덕에서 내려가 낙타를 쓰다듬으며 즐거워했다. 그리곤 데려가잔다.

"아빠, 낙둥이 한국에 데려가면 안 돼?"
"얘를? 어디다 키울래? 아파트에 들어갈까?"


황당하지만 귀여운 질문을 하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 아들 이제 10살인데 아직은 동심이 남아 있구나!'

아들은 처음에는 조금 낙타를 무서워하더니 이제는 낙타와 한 몸이 돼 제법 타는 게 익숙해져 있었고, 나중엔 더 타면 안 되냐고 졸라댔다.

"아빠, 우리 낙타 더 타면 안 돼? 재밌어."
"안돼,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해."
 

사실 낙타를 타고 더 깊이 들어가 사막 캠프에서 하룻밤 자는 투어를 하고 싶었지만, 어제 몸 상태로는 아들에게 무리일 것 같아 1박2일 투어는 취소했었다. 아이가 몸 상태를 회복해 잠깐만이라도 경험하려 반나절 투어를 예약했다.

최대한 무리하지 않으려 애썼는데, 내 우려와는 달리 아들은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하라 낙타 체험 메르주가에서는 다양한 사막 투어를 할 수 있다
사하라 낙타 체험메르주가에서는 다양한 사막 투어를 할 수 있다오영식
 
"태풍아, 원래 낙타 오래 타고 사막 깊이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오려고 했는데, 어제 너 힘들어하고 해서 다 취소하고 잠깐만 타는 걸로 예약했어."
"그래? 난 이제 괜찮은데."
"어제 걱정돼서 아빠가 취소했어. 다음에 더 크면 그때 많이 타자."
"알았어. 나도 이제 다 컸어. 다음부턴 그런 거 취소하려면 나한테 말해줘. 난 낙타 타는 거 재밌단 말이야. 이제 나도 이런 거 다 할 수 있어."
"그래. 우리 아들 아직 아긴 줄 알았는데 이제 다 컸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하였으나, 사건 등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모로코 #사하라 #사막 #유라시아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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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 합니다. 지금까지 6대륙 50개국(아들과 함께 42개국), 앞으로 100개국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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