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과 선거연합? 사회운동의 정치를 시작하자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으로, 체제전환 1

등록 2024.03.11 10:53수정 2024.03.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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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한 염려가 높아지면서 '체제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우리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요구다. 그러나 사회운동은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을까? 보수양당이 '위기'를 동원하며 자신의 진영을 구축하는 것과 다르게 사회운동의 정치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민주당과 연합 가능한 정치?

22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개혁진보 선거연합 연석회의'가 구성되었다. '윤석열 심판'을 내세우며 시민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의 한 흐름이 더불어민주당과 연합했다. 우리가 마주한 정치의 위기에 최소한 절반의 지분이 있는 민주당과 정치 개혁에 나서자는 주장이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다. '비례연합정당'은 '위성정당'과 다르다고 주장한들 문제는 바로 그 '연합' 자체에 있다. 

보수 양당은 2000년대 내내 신자유주의 구조화를 촉진해왔다. 노동의 유연화가 지속적으로 시도되었고 삶이 불안정해지며 곳곳에서 위기가 등장했다. 보수 양당은 이를 해소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경제 성장을 위해 자본을 더욱 자유롭게 하고 노동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며 삶의 위기는 부채를 '지원'하여 개인화했다. 이따금 서로 대척하는 쟁점도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는 세제 문제로, 교육 문제는 입시 문제로 환원하며 주거불안정도 교육불평등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검찰 개혁조차도 여야 정치인에 대한 수사 공정성 문제로 격돌할 뿐이다. 정의가 사법에 내맡겨지고 정치가 사라진 문제는 응시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위기가 심화하면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확산하거나 양당 구도가 더욱 진영화되는 정치의 위기는 전세계적 경향이다. '검찰 독재'의 민주주의 후퇴를 막기 위해 연합한다지만, 검찰 독재를 심판한들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승리가 남을 뿐이다. 민주당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어렵지 않게 하면서 민주당의 정치는 연합 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상황을 사회운동의 정치가 사라져온 결과로 깊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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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3일 서울에서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렸다. ⓒ 체제전환운동 포럼

 
사회운동의 정치

사회운동은 언제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일반적 의미가 아니다. 정치는 확정된 공동체의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이 아니라, 수많은 갈등으로부터 공동체의 성격과 구성원을 끊임없이 질문에 붙이는 과정이다. 노동재해로부터 생명과 안전의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이 이윤보다 존엄을 우선에 놓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고,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가 민주주의의 구성원 자격을 되물으며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에서 정치가 외부화되는 시간도 오래되었다.

사회운동은 수많은 사회 문제에 대해 정책 대안을 내는 활동으로, 진보정당은 그러한 요구를 제도정치로 옮기는 활동으로 서로의 역할을 구분지어왔다.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기치로 추진되어 온 진보정당운동에서 '세력화'는 정당의 지지자를 만드는 일로 축소되었다. 반복되는 '야권연대' 주장은 당원과 지지자들조차 스스로 어떤 세력이 되려는지 혼동시켜왔다.


한편,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 이래 사회운동의 역할이 여러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제도화하는 데 한정되는 흐름이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사회운동의 정치는 사라져왔다. 지금 대두한 연합 논리는 선거 전술의 문제로 한정될 수 없다. 보수 양당이 합심하여 만들어온 위기를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종합하여 분석하고 재정의하며 공동의 전망과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다. 

사회운동의 분절화는 이런 경향을 심화해왔다. 각자의 영역에서 급진적 요구를 구성하고 다른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왔지만 기후위기는 환경운동, 노동권은 노동운동, 페미니즘은 여성운동과 같은 식의 분절적 이해 속에서 서로 다른 과제로 이해되어왔다.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구조적 위기라는 인식은 있지만 그에 맞서는 운동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은 각자에게 떠넘겨져왔다. 사회운동이 지목하는 수많은 위기를 살아내는 민중은 때로는 노동자, 때로는 여성, 때로는 기후시민으로 호출되며 개별 정책의 지지자들이 되었을 뿐이다. 단기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설 집합적 힘을 구성하는 정치가 복원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민중의 세력화 

지난 2월 1~3일 열린 체제전환운동포럼은 사회운동이 현재 부딪친 곤경을 함께 살피며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점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운동의 주체를 교사, 학생, 학부모와 같은 틀에 가두지 않고 확장해야 한다거나 '농'을 농업이나 농민에 한정되는 문제로 사고하지 말고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가 드러나는 현장으로 다르게 사유할 필요가 제기되었다. '노동'이나 '페미니즘' 등 익숙한 주제를 대안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실마리로 다시 위치시키려는 노력도 시작되었다. 이는 사회운동의 입장과 주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넘어선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스스로를 재조직할 능력을 소실할 정도로 실패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사회운동은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지목하는 것을 넘어,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다른 세계를 탄생시키기 위한 자신의 전망을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확장하기 위한 이념의 갱신이 필요하다. 사회운동의 역사 속에서 쌓여온 현실의 경험과 사상적 자원들을 종합하며 자본주의 체제와 단절하고 대안 체제를 조직하기 위한 전망을 밝혀나가야 한다. 

여러 영역에서 등장하는 '위기'를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내는 문제의 여러 양상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때 민중의 세력화가 가능하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더욱 촘촘해진 사회경제적 균열의 선을 따라 단기적 이해관계가 사회적 갈등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주어진 이해관계나 정체성을 넘어서 계급 형성의 관점에서 적대를 조직하고 집합적 전망을 만들어내야 한다. 서로 다른 자리를 살아가는 이들이 갈등을 잠재우기보다 갈등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며, 서로를 민중으로 엮어 세우는 관계가 되어갈수록 사회운동의 전망도 선명해질 것이다. 

체제전환운동의 정치를 시작하자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민중의 세력화에 나서는 운동을 '체제전환운동'이라 부를 수 있다. 체제전환운동의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정치의 양식에 갇히지 말자는 도전이다. 사회가 다양한 개인과 집단으로 분할되어 있음을 전제한 채 다양성을 대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정해온 것이 자유주의 정치다. 체제전환운동의 정치는 자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구성원을 수많은 이해관계 집단으로 분할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와 대적하는 정치다. 민중주권은 직접민주주의의 수단과 절차가 강화되는 것만으로 완수되지 않는다. 억압과 차별과 착취의 질서를 넘어선 다른 질서를 도모하는 정치적 힘이 만들어지는 만큼 민중주권이 실현된다.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 축적을 위한 생산에 사회생태적 재생산을 체계적으로 종속시키며 파괴하는 체제다. 체제전환운동은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하여, 사회생태적 재생산을 사회의 중심에 두며 사회적 물질적 필요를 생산할 대안체제를 구축하는 운동이다. 노동의 존엄과 권리를 박탈하는 자리에서, 자연의 생명과 역량을 수탈하는 자리에서, 차별의 구조를 통해 상호의존의 관계를 지우는 자리에서, 자본주의 체제와 단절하며 대안 체제의 인프라를 형성하는 투쟁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사회운동에서부터 상호의존의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보편적 권리를 창출하며 체제전환의 힘이 생성될 수 있도록 서로 짚어주고 밝혀주는 관계가 사회운동 사이에 필요하다. 홈리스는 주거권운동, 발전노동자는 에너지운동의 주체로 한정하는 대신 서로 다른 투쟁들에서 우리가 어떻게 민중으로 세력화할 수 있는지 함께 찾아가야 한다. 각각의 운동이 제기하는 통찰을 자본주의 체제 비판으로 심화시키는 동시에 구체적 현실에서 힘을 모으기 위한 정세적 계기들을 함께 발견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운동의 대안이 대중 스스로의 정치적 행동을 통해 갱신되어가는 과정이 체제전환운동의 정치일 것이다. 

체제전환운동 정치대회에서 만나자

체제전환운동의 정치를 위해 사회운동의 연합질서를 모색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민중의 세력화를 위해 사회운동의 결집이 필요하다는 데 이견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시도되어 온 다양한 결집이 그 가능성보다 한계를 먼저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안별 연대체, 정치적 구심을 형성하려고 했던 진보정당과 정치조직, 주요 대중조직의 전선체나 여러 영역 간 네트워크로 역할 하려 했던 상설연대체 등과 체제전환운동의 연합질서는 무엇이 다른가. 

정치대회는 이를 해명하는 자리이기보다, 함께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려는 '우리'를 확인하는 자리일 것이다. 사회운동이 각자의 자리에서 부딪치는 곤경을 일거에 해소할 묘책은 없다. 함께 만들어가려는 '체제전환운동'이 무엇일지, 체제전환운동을 '함께' 만들어가는 모습은 어떠할지,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토론을 시작하자. '우리'가 치열하게 만날수록 연합질서의 형식과 원리도 뚜렷해질 것이다. 서로 호흡을 맞추며 더욱 두터운 사회운동을 만들어가자. 해방의 정치는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미류 님은 체제전환운동정치대회 조직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이 글은 <노동자가 만드는 일터> 3월호에도 실립니다.
#체제전환운동 #사회운동 #선거연합 #민중정치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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