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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한테 뭘 가르치라는 거에요, 이런 세상에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조와 연대하는 교육노동자들

등록 2024.03.13 09:44수정 2024.03.1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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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김나혜(왼쪽), 정영미(왼쪽 두 번째) 교사와 교육노동자현장실천 구성원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 노동조합원에 대한 가처분 간접강제금 강제집행이 시작됐다. 2022년 10월 옵티칼 공장에 불이 났다. 회사는 구미공장 물량을 모두 타지역 공장으로 옮겼다. 그런데 구미공장의 노동자 전원에겐 희망퇴직을 강요했다. 이를 거부한 11명의 노동자는 공장 점거 및 고공농성을 이어가며 타지역 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주장하고 있다.

2023년 9월, 사측은 노동조합에 '공장철거방해금지 가처분'을 걸었다. 공장 철거를 목적으로 사측이 찾아왔을 때 방해하면 그때마다 총 950만 원의 간접강제금이 쌓인다. 2024년 2월 6일, 법원이 가처분 간접강제금 강제집행을 인용했다. 보름치가 두 번 인용되었는데 각 5600만 원이다. 11명의 노동조합원이 공장을 한 달 지킨 대가로 1억 1200만 원을 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간접강제금 강제집행은 앞으로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놓고 법조인들은 사측과 법원의 행보에 깊은 유감을 표했다(관련기사: 또 돈으로 노동자 목 조르나 "사탄도 실직할 일" https://omn.kr/27o32). 이번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나도 당해본 일... 얼마나 두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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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석한 김나혜 교사가 양손으로 브이를 하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저는 강원도 동해에 있는 동호초등학교 교사 김나혜입니다. 지금은 6학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노동조합에 연대를 하고 있는데, 구미에 계신 조합원들이 작년에 처음 옵티칼을 알려주어서 지금까지 연대하고 있습니다. SNS에서 필요한 물품이 있다고 하면 택배로 보내는 걸 제일 많이 하고 있어요(웃음).

옵티칼 조합원들이 두려울 것 같아요. 예전에 저도 가처분을 당해본 적이 있어요. 그 당시 교육청을 상대로 하는 투쟁이었는데, 교육청이 가처분을 걸어서 현수막 하나에 100만 원을 내야 했어요. 움츠러들더라고요. '내가 이 돈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저를 너무 힘들게 했어요. 그런데 옵티칼 조합원들은 한 달에 1억이라니. 큰돈으로 실질적인 압박을 하는 거잖아요. 제가 겪은 거랑 비슷하면서도 더 깊게 고민하고 계실 것 같아요.

지금 6학년 학생들은 삼권분립, 법의 정당함을 배우는 시기에요. 수업시간에 법이란 게 얼마나 공정하고 정의로운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정말 부끄러워요. 아이들에게 현실이 어떤지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도 들면서 동시에 '이런 현실을 알려줘도 되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예요. 그럴 땐 정말 사측과 법원에 욕을 하고 싶어요. '아이들한테 도대체 뭘 가르치라고 이러나' 생각해요. 사측 사람들은 6학년 학생들 앞에서 '법은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게 작동한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요?

교육노동자로서 옵티칼 같은 곳에 열심히 연대하려 해요. 조합원들이 정말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외국 투기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싸움이잖아요. 외국 기업이 혜택만 잔뜩 받고 들어와 갑자기 도망가겠다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하니까요.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어느 지역에서 어떤 노동을 하면서 살아갈지 알 수 없으니까, 이런 노동자들이 이기면 좋겠어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더 알려주고 싶어요. 왜 노동조합이 투쟁을 하는지, 왜 이렇게 절절하게 싸워야 하는지.

"학생들도 다 알아요, 불평등한 세상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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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를 찾은 정영미 교사 올해 2월 16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에 정영미 교사가 연대방문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저는 전라남도 고흥에 있는 고흥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회를 가르치는 정영미 교사입니다. 정치와 법, 경제, 공통사회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노동자현장실천'이란 단체에 속해 있습니다. 방학마다 어려운 싸움을 하고 계신 분들을 뵙고 있는데요, 옵티칼은 현장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공장에 어떤 안 좋은 일이 생기고 회사는 고용승계를 안 해주겠다고 하는 이 상황에 기시감이 들어요. 이전에도 여러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이잖아요. 저도 몇몇은 뉴스로 접하고 몇몇은 현장에 직접 가서 접했는데요. 김주익 열사, 배달호 열사, 쌍용자동차 사건 등이 생각나요.

20년 정도 지난 사건들도 있는데, 지금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 된다는 게 참담해요. 회사의 목표는 그때마다 똑같았어요. 노동조합을 무너뜨리는 것. 특히 이번 간접강제금 강제집행은 누가 봐도 이유가 뻔하잖아요. 감당할 수 없고 감당할 필요도 없는 돈으로 노동조합을 무너뜨리고 노동자에겐 죽으라고 하는 것.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치사한 짓이에요.

학교에선 평등한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자주 가르쳐요. 누구나 존중받을 마땅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돈 때문에 자존감 버리고 차별당하는 세상은 옳지 않다고요. 그런데 학생들은 이미 알고 있어요. 구조를 잘 알진 못해도. 빈부격차 같은 것들 때문에 우리 사회가 평등하지 않다는 걸요. 그런 말을 학생들이 하면, 저는 굴복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줘요. 그럼 학생들이 공감하고 고개를 많이 끄덕여요.

가끔 그런 학생들도 있어요. 자기는 그런 불쌍한 노동자가 안 될 거라고. 자기는 부자될 거라고. 그럼 저는 이렇게 말해요.

"다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거 아니겠니.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니까 불쌍하게 보는 게 아니라 응원하고 존중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렇게 나서서 싸워서 세상을 바꾸는 걸 감사해하면 좋겠다."

학생들한테 자주 하는 얘기가 있어요. 우리 사회가 그나마 여기까지 온 건 저렇게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란 얘기예요. 우리 사회가 느리고 가끔은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한국은 외국 기업에 너무 저자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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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토론회에 참석한 정영훈 교수(왼쪽)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관련 국회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정영훈 교수(왼쪽)가 턱을 괴고 고민하고 있다.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저는 부경대학교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있는 정영훈 교수입니다. 옵티칼은 언론에서 처음 본 후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작년 국회 토론회도 함께 했습니다. 외국 자본이 한국에 들어왔다가 노동자들과 문제가 생기는 것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노동법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분노합니다. 외국 자본이 한국에 들어온다고 하면 그때야 누구나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그런데 나갈 때는 갑작스럽게 자기들끼리 결정해서 나가버립니다. 책임감 없이 쉽게 철수합니다. 혹은 철수하겠다는 걸 무기 삼아서 더 많은 혜택을 정부에 요구합니다. 그럼 정부는 대부분 들어줍니다. 그렇게 기업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런 걸 법적으로 잘 잡아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지적해 왔지만, 아직도 안 되어 있습니다.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선 속상할 따름입니다.

옵티칼이 한국에 들어온 경우를 보겠습니다. 사실 기업들도 한국에 들어올 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들어오는 겁니다. 최근 일본이 한국에 비해 디스플레이 산업이 많이 하락했습니다. 옵티칼 입장에서 LG와 삼성이 옵티칼에 요구하는 디스플레이는 엄청난 물량입니다. 그러니 한국 LG 공장 옆에 공장을 지어서 들어오는 게 이익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저 들어온다고 하면 고맙다고만 합니다. 너무 저자세입니다. 기업이 실제로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들어온 것인데도요.

가처분 간접강제금 강제집행을 바라보며, 굳이 왜 법원이 이렇게까지 나섰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측과 로펌의 행태는 뻔했습니다. 가처분을 걸었음에도 노동자들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으면 당연히 강제집행을 신청하겠죠. 그런데 법원이 이걸 들어준 건 이해가 어렵습니다. 현재 금속노조가 '총력투쟁'을 선포했습니다. 법원이 이걸 들어주면 금속노조가 이렇게 싸울 게 뻔했습니다. 법원이 한 행동 때문에 이 상황을 풀기 더 어려워졌습니다.

간접강제금 강제집행은 사실 단순한 문제입니다. 생존의 문제입니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당신 같으면 이 돈 낼 수 있겠습니까?'라고 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대부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일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데, 법원은 돈으로 강제하는 게 아니라 대화로 풀 수 있도록 유도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옵티칼 조합원들의 행동은 자기만을 위한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했다면 싸우지 않고 떠났겠죠. 왜 간접강제금 강제집행을 당하면서까지 있겠어요.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덧붙이는 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언제나 연대를 기다립니다. 조합원들은 좋은 댓글에 힘을 얻습니다.
#노동조합 #구미 #공장 #NITTO #가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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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어렵다고 안 할 것인가'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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