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토테미즘의 '보고'이자 해양문화 거점 완도

등록 2024.03.22 11:53수정 2024.03.22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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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읍리에 있는 고인돌 유적지 ⓒ 완도신문


선사인류가 완도의 여러 섬에 정착하면서 사수도 해역이 그들의 중요한 생활거점이 됐고 점점 섬 문화가 발전했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질서유지가 필요했으며, 무리를 통제할 제도가 필요했다. 인류가 살아가면서 사후세계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연현상에 적응해야 했기에 개척해야 할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종교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인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두려움에 따라 환상의 수단으로 종교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권력의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초기 종교는 본질적으로 지적이었고 전적으로 자연환경에 달려있었다.

자연 숭배를 넘어 종교는 발전하여 영적 기원의 뿌리를 얻었지만, 주변 환경의 제약을 받았다. 자연 숭배가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개념은 초월 세계에서의 일들을 구상했다. 비, 호수, 나무, 그리고 수만 가지의 자연 현상을 대표하는 영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을 모두 숭배했다. 인류는 모든 권력의 표현을 두려워했고, 막강한 자연현상을 지켜보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하늘의 신비한 섭리로 두려워했을 것이다.

돌 숭배 뒤에 산 숭배가 따랐다. 신들이 산에서 산다고 믿었다.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 어떤 산은 신과 연결되었고 신성한 존재로 인식됐다. 

또 고대인류는 땅, 공기, 물, 불을 숭배해 왔다. 천둥과 번개가 따르는 폭풍은 원시인이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그래서 불의 숭배와 천둥번개를 무서워하는 현상은 집단을 형성하게 했고, 많은 초기 집단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부족의 족장들은 영웅이었고 죽고 나서는 신으로 추대 받았다. 원시종교는 필사 인간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서 그 신들을 만들어냈다.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세상의 통치자들의 요구에 따라서 그들이 신으로부터 내려왔다고 인식했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이처럼 자연 숭배사상은 태초인류의 지성에서 저절로 생겨났다. 이 영은 아무리 원시적이라도, 인간의 종교의식 욕구를 항상 불러일으켰다. 동물을 무서워하는 것은 숭배를 자극했고, 자연의 대상물에 집중되었을 때도 영은 무엇인가 숭배하고 싶은 인간의 충동에 분명한 기원을 주었을 것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숭배한 대상은 돌이라고 한다. 거석문화의 존재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돌은 단단하고 변하지 않은 산물이라서 그 형상은 인류에게 큰 감명을 주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돌에 있는 구멍을 특별하게 여겼다. 구멍이 많은 바위는 병을 고치는 데 특별히 효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돌을 숭배하는 문화는 지금도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여서도 신석기 인류 존재 발견에 이어 청산도에 있는 청동기 유적인 고인돌 분포 지역을 재조사했다. 지난 2022년 청산면 지석묘 지표조사를 시행하여 예전보다 더 많은 유적을 발굴했다. 마한의 유적으로 밝혀진 고분도 발굴했고 철기시대의 유물도 다수 수습했다. 이로써 사수도 해역을 무대로 활동한 고대 인류의 활동상이 점점 더 가시화 되고 있다.

거석문화는 세계 공통문화이다.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자연석이나 가공한 돌로 구조물을 축조한 행위나 돌을 세워 숭배의 대상이나 무덤으로 이용한 문화를 통틀어 거석문화로 구분한다.

자연의 여러 가지 현상과 인간의 생사를 기원하는 기쁨과 공포의 대상을 표현하는가하면, 지도자를 추모하여 세워진 것, 풍작과 수확물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하늘에 전하는 행위, 주변집단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해 세운 기념물 등 거석문화의 유적이 주로 큰 바다 인근에 분포한 것을 보면 대양을 항해하는 개척정신과 관련한 해양문화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크다.

청산도에 청동기 인류가 정착해 세력을 이룬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그동안 완도의 모든 섬들에서 선사시대 유적조사가 면밀히 이뤄지지 않아서 묻힐 뻔 했지만, 이 지역 고대 인류의 발자취와 선사시대 인류의 활동상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큰 세력이 사수도 해역을 지키며 폭넓게 활동 영역을 형성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완도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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